2013년 3월 5일 화요일

가을에 띄우는 편지

가을에 띄우는 편지 - 김정한

가을입니다

이 가을에는 당신을 찾아 잠시 머물다 오겠습니다

늘,

내일, 모레, 그리고 그 언제인가는

당신에게 가는 길을 열겠노라 말하면서도

당신 허락없이 닫고 또 닫았던 나를 용서해 주시지요

늘 당신에게로 가는 삶은

퇴행성 병처럼 뒷걸음 쳐지기만 했습니다

이 가을에는

마음 편히 당신 그늘아래서

누웠다가 기대었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리허설 없는 삶처럼,

당신과의 사랑도 여전히 리허설 없는 생방송입니다

내 인생의 삶이 관객이 필요치 않듯이

당신과의 사랑도 관객이 필요치 않겠지요

안에서 밖으로,

또 그 안에서 밖으로

그림자도 스며들지 못하게 꼭 잠근 채

당신 곁에서 편히 그리고

오래 오래 쉬다가 오겠습니다

내 그리운 당신께 곧 가겠습니다

김정한시집 - 너를 사랑하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