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빛 바랜 사진 한 장
당신을 내 곁에 있을 땐
사진은 아무래도 좋았다
풀밭에 앉아서 서로 발을 맞대거나
등 뒤에서 당신을 껴안고
당신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포개는
가지가지의 사진들은
사진찍기를 핑계로 너의 향내를 맡고 싶어 안달하는
내 작은 욕망이 배어 있다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또 한 치 서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이 떠난 후 당신과 나는
서로의 당신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함께 찍은 사진을 낙엽처럼 쌓아두고 불을 지폈다
그렇게 당신은 내 기억에서 한 줄기 연기(煙氣)되어 날아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당신은
담배 한 개피 입에 물거나
술 한 잔 입에 털어 넣을 때
그리고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 창문 사이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인의 무심한 얼굴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내 주위로 스쳐 지나갈 때
언뜻언뜻 고개를 내 밀고
내 가슴에 그리움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움이란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 뼘씩 멀어질 때마다
벌어진 거리 만큼씩 서로를 다가가게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래
당신이 떠난 후 남겨진 빈 자리를 그리움은 자리하고 앉아
당신에 대한 흔적이 하나 둘 희미해져 갈 때마다
화등잔(火燈盞) 되어 눈버둥치며
아스라해져 가는 추억에 애써 불을 지피곤 한다
오늘 아침 또다시
당신 얼굴이 떠오르고
몸내음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고 있다
이럴 때면 파편처럼 남아 있던
흔적마저 기억에서 밀어내려는 내 곁에
붙박이처럼 버팅기고 선 그리움은 향수를 자극하며
한사코 당신을 기억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부질없어 하는 내 등을 떠 밀며
미처 타지 못한 채 버려진 사진의 잔재(殘滓)를 뒤져
일그러진 당신의 한 조각 모습이라도 찾아내도록
목매달아라 부추긴다
그렇게 그리움은 한바탕 헛 바람(願)을 일으키고
역시 그렇지 타박하며
클클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를
절망의 늪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이럴 때 정작 필요한 것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당신의 형체라도 떠올릴 수 있는
빛 바랜 한 장의 사진이다
그래 난
당신과 함께 보던 옛 사랑의 시집 책갈피에서
당신 얼굴이 사진에 담겨
내 앞에 툭 떨어지는 요행을 바라며
책장을 뒤엎고 헌 책을 뒤지기 시작한다
성모(聖母)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내 입에서
각기 제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