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9일 화요일

당신의 빛 바랜 사진 한 장

당신의 빛 바랜 사진 한 장


당신을 내 곁에 있을 땐

사진은 아무래도 좋았다
풀밭에 앉아서 서로 발을 맞대거나

등 뒤에서 당신을 껴안고

당신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포개는

가지가지의 사진들은

사진찍기를 핑계로 너의 향내를 맡고 싶어 안달하는

내 작은 욕망이 배어 있다

인화된 사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또 한 치 서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이 떠난 후 당신과 나는

서로의 당신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함께 찍은 사진을 낙엽처럼 쌓아두고 불을 지폈다

그렇게 당신은 내 기억에서 한 줄기 연기(煙氣)되어 날아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당신은

담배 한 개피 입에 물거나

술 한 잔 입에 털어 넣을 때

그리고 거리를 질주하는 버스 창문 사이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인의 무심한 얼굴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내 주위로 스쳐 지나갈 때

언뜻언뜻 고개를 내 밀고

내 가슴에 그리움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움이란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한 뼘씩 멀어질 때마다

벌어진 거리 만큼씩 서로를 다가가게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래

당신이 떠난 후 남겨진 빈 자리를 그리움은 자리하고 앉아

당신에 대한 흔적이 하나 둘 희미해져 갈 때마다

화등잔(火燈盞) 되어 눈버둥치며

아스라해져 가는 추억에 애써 불을 지피곤 한다
오늘 아침 또다시

당신 얼굴이 떠오르고

몸내음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고 있다
이럴 때면 파편처럼 남아 있던

흔적마저 기억에서 밀어내려는 내 곁에

붙박이처럼 버팅기고 선 그리움은 향수를 자극하며

한사코 당신을 기억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부질없어 하는 내 등을 떠 밀며

미처 타지 못한 채 버려진 사진의 잔재(殘滓)를 뒤져

일그러진 당신의 한 조각 모습이라도 찾아내도록

목매달아라 부추긴다
그렇게 그리움은 한바탕 헛 바람(願)을 일으키고

역시 그렇지 타박하며

클클한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를

절망의 늪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이럴 때 정작 필요한 것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당신의 형체라도 떠올릴 수 있는

빛 바랜 한 장의 사진이다
그래 난

당신과 함께 보던 옛 사랑의 시집 책갈피에서

당신 얼굴이 사진에 담겨

내 앞에 툭 떨어지는 요행을 바라며

책장을 뒤엎고 헌 책을 뒤지기 시작한다
성모(聖母)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내 입에서

각기 제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