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7일 일요일

몰운대에서 나를 죽이다

그까짓 게 무슨 사랑이냐고
그까짓 게 무슨 그리움이냐고 말을 하면서
잠깐 옷깃 스치고 지나가는 너, 소금강
참을 수 없는 존재가 견딜 수가 없어
벼랑으로 가파르게 서서 바라보고 있는 나, 몰운대
여기까지 무엇하러, 왜, 왔다는 것인지
여기까지 누구와 어떻게 부딪혀 흘러왔다는 것인지
여기까지 여기까지만 이제는 모두 끝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나는 그 끝을 보고 싶어서
도대체 나는 절망을, 파멸을, 비극을 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해 보는 것이다
어슴프레 생각나는 유년의 시절처럼
창문을 열기도 전에 서성거리다 가버린 길이 보인다
길 아래로 견딜 수 없는 물빛이 따라 오고 있었다
논개처럼 촉석루 아래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거짓의 위선의 두터운 껍질 둘러싸인 살갗뿐인
나를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없애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오랫 동안 선착장 밧줄에 묶여
달빛 받아 두 다리 휘청거리며 쓰러질 듯 서 있는
낡은 어부의 배에 올라 그물을 몰래 훔쳐
남해의 쪽빛 바다와 외롭게 서 있는 섬들을 던져 잡아
새벽같이 여기 몰운대까지 끌고와
소금강에 던지면 그 모두 부활의 물안개로 피어나는 것이다
안개속에서 시퍼런 강물의 칼들이 일어나
회한과 반성과 참회와 두려움 가득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르고 찔러
모래 같은 먼지 같은 이 가벼운 세상에서
나를 감추는 것이다 나를 죽이는 것이다
서로의 몸을 묶어 위태롭게 서 있는 천년 소나무도
저 바다와 섬들로 감추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몰운대 저 거치른 절벽이 되거든
사랑하는 사람이여 아라리 정선 여기까지 와서
몰운대, 내가 죽은 후에도 눈빛으로 만져다오 떠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