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5일 토요일

가위, 끊다

겨울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피 맑은 나의 수액
뿌리로 다 내려보내려고
손에 가위를 들었으니
지금 나에게
끊어야 할 것이 많다
우선 시퍼렇게 날이 선
마음을 자르고
둥글게 구부려
달콤한 혹은 가시 같은 말
읊었던 혀를 입술을 끊는다
살 얻으려고
더듬고 움켜잡았던 손도
풀 죽이려고
세게 눌러 밟았던 발도
삭둑 삭둑 끊는다
금식으로 속을 다 비워내려고
목마저 자르면
눈도 없으니 귀도 없으니
창도 닫히고 문도 닫히고
빗장을 굳게 지른 몸통의
단단한 바위다
절정에 오른 목숨들이
하산을 준비하는 것처럼
불시에 동안거에 들어간
꽃들과 같이
가위 하나 들었으니
지금 끊어야 할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