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4일 일요일

순례(巡禮)

길거리 가판대에 놓인
저 붉고 푸른 사과
씨앗에서 열매에 이르기까지,
공명통과 현(絃)으로
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금(琴)
싹에서 오동나무에 달하기까지,
소망의 허리 꺾어진 줄 모르고
숨 헐떡이며 달려온
저 짐승 같은 나
탯줄에서 묘비에 닿기까지,
누가 무어라 그래도
지나온 길마다
척박한 땅에서 꽃 피워냈던
희생(犧牲)이다
피 흘리며 순교했던
성지(聖地)다
그러니 사과 다 주고
망연자실 서 있는사과나무에게로
발목 잘려나간
비명의 오동(梧桐)에게로
살갗 벗겨지고
뼈 드러난 내몸에게로
순례의 길 떠나야 하지 않겠나
가는 길에
나와 같은 생(生) 만나거든
손 내밀어 악수하지 말아라
숭배해야 할 것이 있으니
가까이 지나간 너 자신에게
머리 숙이고 무릎 꿇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