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박재삼의 ´햇빛의 선물´ 외


<선물에 관한 시 모음> 박재삼의 ´햇빛의 선물´ 외

+ 햇빛의 선물

시방 여릿여릿한 햇빛이
골고루 은혜롭게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있는데,
따져보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무궁무진한 값진 이 선물을
그대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은 절실하건만
내가 바치기 전에
그대는 벌써 그것을 받고 있는데
어쩔 수가 없구나.
다만 그 좋은 것을 받고도
그저 그렇거니
잘 모르고 있으니
이 답답함을 어디 가서 말할 거나
(박재삼·시인, 1933-1997)
+ 선물

내 너무 가난하여
그대에게 줄 것이 없네

헤진 마음 한 자락
곱게 다려 보내드리거니

아름다운 사람 만나
눈물 흘릴 일 있거든

접었던 마음 꺼내어
그대 손수건이 되었으면
(강인호·시인)
+ 선물

누군가가 나에게
낙엽 하나를 선물로 준다면
난 그 낙엽을
곱게 붙이는 노력을 해야 하리

누군가가 나에게
붓 하나를 선물로 준다면
난 그 붓으로
곱게 글쓰는 노력을 해야 하리

누군가가 나에게
뜨거운 마음을 준다면
난 그 마음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하리
(김옥진·시인, 1961-)
+ 선물

쌍계사
계곡의 물소리를
청자 매병에 담아
네게 보내노라
그대 붓을 들어
피아골의
구름을 그려보게나
(황금찬·시인, 1918-)
+ 선물의 집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바닥이 나지 않는 선물의 집
무엇을 줄까
어렵게 궁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쁘게 할 묘안이
끝없이 떠오르네

다른 이의 눈엔 더러
어리석게 보여도 개의치 않고
언어로, 사물로 사랑을 표현하다
마침내는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네, 서로에게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괴로움도 달콤한 선물의 집

이 집을 잘 지키라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준 것이겠지?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선물

하늘에
태양과 달을 띄운 것은
당신의 큰 선물이다

지상에
물과 바람을 주신 것도
당신의 큰 선물이다

걷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당신이 지은 것이니
당신의 품안에서 모든 것이 숨쉰다

그 자비와 사랑을 잊고 사는
어두운 자여
자신의 존재가
자신 때문에 살아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세상 속
벌레 하나, 풀잎 하나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태어났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라
(박덕중·시인, 전남 무안 출생)
+ 선물

자, 선물
그가 내민 네모곽 안에 든
하얀 운동화 한 켤레
싸구려 중국산 상표 붙었다.

북망산 떠나면서

꽃상여 매줘 고맙다고 준
동네 할머니 선물

읍내 신발점 가서
털신으로 바꿔 오면
올 겨울
차암
따뜻하겠다.
(박래여·시인, 농부의 아내)
+ 선물

피아노 소리일까
바이올린 소리일까
가깝게 맑은 악기소리 울린다
너의 선물을 생각하는 나는 감미로운 악기인가 봐

거리로 나갔다. 시장 백화점
선물을 고르기 위해 다리가 휘청거리도록
종일 기웃거렸다

왜 선물이 그렇게 정해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내 마음을 나는 잘 알지
뭘 살까 생각하는 그 마음을 즐기기 위해
나는 오래 선물을 정하지 않고 행복해 한 거야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이란 걸 선물을 사면서
나는 알았어.
이 행복한 마음
바로 네가 준 선물임을 그때 나는 알았어.
(신달자·시인, 1943-)
+ 선물

세상이 내게 준 선물은
내가 쓰는 나의 시
내가 세상에게 주는 선물도
내가 남기는 나의 시
세상이여 영원하거라
내가 남긴 시여 오래 살거라
이 세상은 참 좋은 곳이란다.
(나태주·시인, 1945-)
+ 선물

받는 것은 될수록 줄여서 받고
주는 것은 될수록 늘려서 주리
그대 내게 주시는 것
비록 작더라도
큰 상으로 알고 받겠으니
내가 주는 것 비록 크더라도
작은 별로 바꾸어 받으시라.
(나태주·시인, 1945-)
+ 선물

나에게 이 세상은 하루하루가 선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만나는 밝은 햇빛이며 새소리,
맑은 바람이 우선 선물입니다

문득 푸르른 산 하나 마주했다면 그것도 선물이고
서럽게 서럽게 뱀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강물을 보았다면 그 또한 선물입니다

한낮의 햇살 받아 손바닥 뒤집는
잎사귀 넓은 키 큰 나무들도 선물이고
길 가다 발 밑에 깔린 이름 없어 가여운
풀꽃들 하나 하나도 선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지구가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고
지구에 와서 만난 당신,
당신이 우선적으로 가장 좋으신 선물입니다

저녁 하늘에 붉은 노을이 번진다 해도 부디
마음 아파하거나 너무 섭하게 생각지 마서요
나도 또한 이제는 당신에게
좋은 선물이었으면 합니다
(나태주·시인, 1945-)
+ 선물

그럴 수 있다면
그대에게
나 진정
좋은 것 주고 싶네

곱고 예쁘고 값이 비싸고
그렇게 눈에 띄는 게 아닌
조용하고 부드럽고 빛나는 것을

그대가 생활의 피로에 싸여
밤 같은 절망에 몸져 앓을 때

그럴 수 있다면
그대에게
나 진정 주고 싶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게지만
분명히 가장 찬란한 선물

<희망>을
우체함에
넣고 싶네.
(정숙자·시인)
+ 가장 따뜻한 선물

빙하의 어둠에
여명의 아침이 밝아오는 것
얼어붙은 노숙의 온몸을 녹여줄
해가 둥실 뜨는 것
며칠 굶은 생에게
펄펄 끓는 국밥 한 그릇 건네는 것
벌벌 떠는 이웃에게
두툼한 속옷 한 벌 입혀주는 것
쓰러져 누운 목숨에게
한 사발 죽이 되고
손이 되고 발이 되어 주는 것
사막의 입술에 혀에
물 한 모금 적셔주는 것
서리 내려앉는 방바닥을 데워줄
탄을 부엌에 쌓아두는 것
눈멀고 귀 먹은 것들에게
빛으로 소리로 적선을 베푸는 것
가진 살 몇 점으로
가진 피 몇 방울로
가진 마음 몇 가지로
가장 따뜻한 선물 만들 수 있으니
가진 것 없다고 하지 마라
내가 더 필요하다고 하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의
당신이 있지 않느냐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원주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유안진의 ´들꽃 언덕에서´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