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5일 목요일

용서(容恕)

눈 앞에 보이는 모든 사랑이
독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 뒤를 따라
해일보다도 홍수보다도
더 강렬하게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이 있다
나를 용서(容恕)하라고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비친다
용서(容恕)는 이전에서의 삶을
소처럼 게워 내어 되씹는 것이라
누가 먼저 돌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인지
누구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를 새길 수 있는 것인지
원래부터 죄 없는 자 있다면
어느 누구하고의 만남도 없을 터인데
얼굴 환한 낮은
비밀 가득한 밤을 용서하고
지는 해는 뜨는 달을 용서하고
그대, 겨울 나무의 빈몸을 몰래 엿본
나를 비로소 용서한다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마음 안에 벽을 세우고 창살을 끼운 채로
돌처럼 돌아앉아 상처 받은 영혼은
가장 깊은 곳에서 잠이 든다
그러면 용서처럼
숲그늘과 화해(和解)를 하려고
상생(相生)의 햇빛이 들고
용서처럼 살갗 갈라진 논바닥에
오래 묵은 해원(解寃)의 소나기가 내리고
절벽의 벼랑의 끝으로 달려가서
한 줄기 바람을 등에 지고
위태롭게 선 소나무의 뿌리에
사랑보다 더 큰 생명을 주려고
눈이 펄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가는 사람도
용서(容恕)를 하고
나를 죽이고 가는 사람도 비로소
용서(容恕)를 하면 눈 녹듯이 얼음 녹듯이
내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