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8일 월요일

전봉건 시인의 ´꽃과 마음´ 외


<마음에 관한 시 모음> 전봉건 시인의 ´꽃과 마음´ 외
+ 꽃과 마음

나는 꽃을
만질 수가 있지만
내 마음을
만질 수는 없어요.

하지만
꽃은
내 마음을
만질 수가 있답니다.

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색색가지 예쁘게 물드는 것은

꽃이
색색가지 예쁜 손으로
내 마음을
만지작거리는 때문입니다.
(전봉건·시인, 1928-1988)
+ 마음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이 싱그럽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
진실은 눈멀고
해와 달이 없는 벌판
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무간지옥이 따로 있는가
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좇는 자
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내 마음이 조용해질 때

아침마다
세숫물 안에서
만나는 사람.

두 손을 세숫물에
담그면
그 사람은 달아난다.

나는 여기
남아 있는데
그는 달아나
세숫물 밖으로 사라진다.

-엄마, 이걸 봐요.
그 사람이 없어졌어요!

-그럼, 한참을 기다려라.
네 마음이 맑아지면
다시 돌아올 테다, 그 사람이.
(권영상·아동문학가)
+ 지금은 공사중

어제는 정말 미안해
별것 아닌 일로
너한테 화를 내고
심술부렸지?

조금만 기다려 줘
지금 내 마음은
공사중이야.

툭하면 물이 새는
수도관도 고치고
얼룩덜룩 칠이 벗겨진 벽에
페인트칠도 다시 하고
모퉁이 빈터에는
예쁜 꽃나무도 심고 있거든.

공사가 끝날 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 줄래?
(박선미·아동문학가)
+ 마음씨

모나지 않은
꽃씨 같아야 한데요.

너와 나 사이
따스함 묻어나면
연한 새싹 돋아나는
마음씨.

흙이
봉숭아 꽃씨 속에서
봄을 찾아내듯

마음씨 속에서
찾아내는 동그라미.

가슴 깊이 묻어 두면
더 좋데요.
(오순택·아동문학가)
+ 분꽃 씨처럼

만두 껍질 같은 씨앗들의 옷을 살짝 만지면
더 야물어진 까만 꽃씨가


떨어집니다.

꽃씨 속의 하얀 가루를 손바닥에 모아서
친구들의 손등에 발라 주며
소꿉놀이를 합니다.

까만 꽃씨 속에는
하얗고 보드라운 분가루가 있어
나는
꽃씨의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예쁜 꽃을 피워 꽃밭을 만드는 꽃씨처럼
나는
친구들의 마음에 고운 화장을 해주고 싶습니다.
(박명자·아동문학가)
+ 꽃씨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딱딱한 땅을
뚫게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세상을 물들이는 꽃이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자기 몸이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리란 걸
(안오일·아동문학가)
+ 마음속 메아리

마음에도
메아리가 있나 봐요.

누군가를 향해
미워!
구름 뒤에 숨어서 소리쳤는데도

나도 너 미워!
씰룩씰룩 화난 목소리
금방 천둥처럼 되돌아옵니다.

마음에는 정말
메아리가 있나 봐요.

미안해!
아주 조그맣게 봄바람에게 속삭였는데도

나도 미안해하며 웃는 얼굴
환한 햇살 되어 되돌아오니 말이에요
(한현정·아동문학가)
+ 꽃물 들이기

텃밭에 봉숭아꽃잎 물든다.
여름 볕에
화아, 발갛게
화아, 희고 노랗게

꽃잎 몇 장
초록 이파리 몇 장 따다 콕콕 찧으며
엄마가 기도한다
내 손톱에 해달별처럼
밝은 고운 물 들게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고운물 들여 주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먼저 물들여야하는 것

내 조그만 손톱 물들이다가
엄마 손가락이
먼저 물든다.
(박예분·아동문학가, 전북 임실 출생)
+ 응시

내 귀는 네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 어찌 네가 편할 것인가
그리고 내게
네 마음밖에 그 무엇이 들리겠는가
(황인숙·시인, 1958-)
+ 구두 뒤축에 대한 단상

겉보기엔 멀쩡한데
발이 빠져나간
구두의 뒤축이 한쪽으로 심하게 닳았다

보이지 않은 경사가 있다
보이는 몸이 그럴진대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마음의 경사여

구두 뒤축도 없는 마음의 기울기는
무엇이 보정(補正)해주나 또
뒷모습만 들켜주는 그 경사를 누가 보아주나

마지막 구두를 벗었을 때
생애의 기울기를 볼 수는 있을 것인가
수평을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되어버릴 생이여, 비애여

닳은 구두 뒤축 덕분에 나는 지금 멀쩡하게 보일 뿐이다
(복효근·시인, 1962-)
+ 공터의 마음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 들어
아직은 만선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함민복·시인, 1962-)
+ 마음의 방

방문을 열면
그 너른 들판이 펄럭이며 다가와
내 이야기를 듣는 벽이 된다

그저 떠돌던 바람도
큰 귀를 열고 따라 들어온다
커피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노라면

나는 잊혀진 왕족처럼 적막한 고독감과 함께
잃을 뻔한 삶의 품위를 기억해낸다
마음의 4분의 1은 외롭고 또 4분의 1은 가볍고
나머지는 모두
무채색의 따뜻함으로 차오른다

두어 개 박힌 대못 위에
수건 한 장과 거울을 걸어두는 것
그리고 몇 자루의 필기구만으로
문명은 충분한 것임을 깨닫는다

마음속이
작은 방만큼만 헐렁했으면
(김수우·시인, 부산 출생)
+ 동글동글

세상의 모든 씨앗들은
동글동글하다

그 작은 동그라미가 움터
파란 잎새들이 돋고

세상의 어느 모퉁이를 밝히는
방실방실 꽃들이 피어난다.

세월의 강물에 깎이고 깎인
조약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가 손 같은 동그란 조약돌 하나
가만히 만지작거리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 없고
평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흐르는 세월의 강물 따라
이 마음도 날로 동그랗기를....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나태주 시인의 ´풀꽃´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