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못 본 지 여러날이 흘렀습니다
당신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도
오늘처럼 소나기 내린 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도록
날카로운 물의 유리 무기들고
안개가 습격해 온 것을 아는지요
그때 당신은 이렇게 말을 했어요
저 안개라는 병균이 침범하면
하나씩 둘씩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간다고
저 안개가 끌고 가는 곳으로 가보고 싶다고
대서양 바다 깊은 해저라든가
아프리카 나무 우거진 밀림이라든가
모래바람 사나운 사하라 사막이라든가
그곳에 가서 안개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요
그런 당신이 잠이 들면 누군가
처음도 끝도 없이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안개 짙은 나라로 데리고 가는
꿈을 꾸곤 한다고 나에게 말을 했지요
시간도 공간도 사라져버리고 없는
그런 세계가 안개라고
당신을 바라보는 나의 검은 눈동자가 안개라고
안개속으로 사라지며 말을 했지요
안개는 어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한 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그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몸을 불태워서 다시 부활하는 것이라고
저 유령의 몸을 걸치고 다가와서는
잠자는 무덤속의 뼈와 살들을
다시 하나로 붙여 합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나와 세상이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눈을 열고 몸을 열고 세상을 여는 것이라고
아,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나와 당신이 비밀스런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나와 당신이 하나되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