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사자산 계곡
동갑내기 친구들과
가재를 잡았었다.
해는 서산에 숨어 있고
가재 잡는 친구는
바위 위에 서서 웃었다.
눈 내린 겨울
보름달이 찾아오면
빈깡통이 축구공 되고
축구공이 발이 되어
하얀 밤 깊는 줄도 몰랐다.
정월보름
호롱불이 춤을 추면
동그르 앉은 얼굴
발갛게 그을리고,
찹쌀밥 부럼 깨는 밤
할머니 몽당귀신 이야기에
길 가던 겨울바람도
귀 기울였다.
TV가 처음 마을에 들어오던 날
동네 아이들은
산 너머에서까지 모여들었고,
저녁이면
아버지가 구워 주는
군옥수수 맛에
고향의 밤은 노을처럼 달게
익어만 갔다.
봄이면 어김없이
뒷동산 진달래가
울긋불긋 수다스럽던
그 고향 언덕에
지금은 한 점 바람만이
머물 뿐,
포장된 아스팔트 위에
차렷으로 서 있는
전신주 끝에는
취객의 주정소리 만이
허공을 맴돌며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