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4일 월요일

송찬호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외


<달에 관한 시 모음> 송찬호의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외
+ 달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송찬호·시인, 1959-)
+ 달

달나라에는 죽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은 밝습니다
(김준태·시인, 1948-)
+ 달

달을 쳐다보며 은은한 마음,
밤 열 시경인데 뜰에 나와
만사를 잊고 달빛에 젖다.

우주의 신비가 보일 듯 말 듯
저 달에 인류의 족적이 있고
우리와 그만큼 가까워진 곳.

어릴 때는 멀고 먼 곳
요새는 만월이며 더 아름다운 것
구름이 스치듯 걸려 있네.
(천상병·시인, 1930-1993)
+ 초승달

배고픈 소가
쓰윽
혓바닥을 휘어
서걱서걱
옥수수 대궁을 씹어 먹을 듯
(함민복·시인, 1962-)
+ 목욕하는 달

어느 날 밤 개울가를 거닐다가
깜짝 놀랬다

물 속에서 발가벗고
목욕하고 있는 달을 본 것이다

물은 알몸의 달을 숨겨주려고
물결을 이루며
혼란스럽게 아롱거리고 있었다.
(차영섭·시인)
+ 초승달

누이가
아침 내내 찾고 다니던 속눈썹이
햇빛에 하얗게 바래서는
수줍게도 하늘 한 쪽에 떠 있네

별의별 가슴을 다 뒤져보아도
눈물이나 슬픔에 짓무른 눈,
욕망으로 버얼겋게 충혈된 눈,
호시탐탐 기회나 엿보는 눈,

그런 것들만 겨우 만날 거면서
파르르
가슴만 떨릴 거면서

저리 시린 지경에서
누이는 외짝 눈을 하고 또
어느 사랑을 그리시는가

어느 세상을 살피시는가
(김영천·시인, 1948-)
+ 달빛 가난

지붕 위에도 담 위에도
널어놓고 거둬들이지 않은 멍석 위의
빨간 고추 위로도 달빛이 쏟아져 흥건하지만
아무도 길 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부지, 달님은 왜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나요?´
´잠이 안 와서 그런 거지.´
´잠도 안 자고 그럼 우린 어디로 가요?´
´묻지 말고 그냥 발길 따라만 가면 된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도 무섭지 않았던 건
아버지의 눌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부지 그림자가 내 그림자보다 더 커요.´
´근심이 크면 그림자도 큰 법이지.´
그날 밤 아버지가 지고 오던 궁핍과 달리
마을을 빠져 나오며 나는
조금도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김재진·시인, 1955-)
+ 달빛체질

내 조상은 뜨겁고 부신
태양체질이 아니었다. 내 조상은
뒤안처럼 아늑하고
조용한
달의 숭배자이다

그는 달빛그림자를 밟고 뛰어 놀았으며
밝은 달빛 머리에 받아 글을 읽고
자라서는, 먼 장터에서
달빛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왔다.

낮은
이 포근한 그리움
이 크나큰 기쁨과 만나는
힘겨운 과정일 뿐이다

일생이 달의 자양 속에
갇히기를 원했던 내 조상의 달빛 체질은
지금
내 몸 안에 피가 되어 돌고 있다

밤하늘에 떠오르는 달만 보면
왠지 가슴이 멍해져서
끝없이 야행의 길을 더듬고 싶은 나는

아, 그것은 모태의 태반처럼 멀리서도
나를 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인력이 바닷물을 끌듯이
(이수익·시인, 1942-)
+ 내 늑골 아래 달이 뜬다

사람들이 떠나갔다
늑골 아래가 시리다

나 한번도 옆구리에 날개가 매달린 적 없었으니
요란스럽게 푸드덕댄 적도 없다

다만 늑골께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니
거기 떠올라 있는
얼음처럼 차고 흰 달이 만져진다
(장석주·시인, 1954-)
+ 달같이

연륜이 자라듯이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 하나 뻐근히
연륜처럼 피어나간다
(윤종주·시인)
+ 달빛 기도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이해인·수녀, 1945-)
+ 여름에는 저녁을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 위에는
멍석
멍석 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숲 속에서는
바람이 잠들고
마을에서는
지붕이 잠들고

들에는 잔잔한 달빛
들에는
봄의 발자국처럼
잔잔한
풀잎들

마음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차는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오규원·시인, 1941-2007)
+ 조각달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피 말리는 거역으로
하얗게 뜬 새벽

거짓말처럼
죽은 자들 속으로
당신은 떠나가고

나는
하얀 과거 하나 더 가졌다

당신 묻을 때
내 반쪽도 떼어서 같이 묻었다.

검은 하늘에
조각달 피었다
(문정희·시인, 1947-)
+ 낮달

왜 그리
내 저무는 때에만 오시는지.
또 비켜나시는지요
어머니, 당신의 인생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저
바람 찬 가지 끝 먼 산마루 여러 길 위에
근심의 힘으로 뜬
흰 낯빛.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자꾸 멀리 잊습니다.
(문인수·시인, 1945-)
+ 달의 영토

모두들 잠든 시간, 서늘하게 걸려 있는
저 달은 우주로 귀환하지 못한
영혼들의 오랜 영토가 아니었을까
남겨진 이들이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갈라진 논바닥처럼 가슴이 타들어갈 때,
달에 스민 영혼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상을 내려다본다, 저 영토에도
개울이 흐르고 새가 날고
창백한 영혼들이 밥상머리에 모여 앉아
지상에서의 한때처럼 둥근 숟가락질을 하겠지
먹구름이 달의 주위를 감싸고돈다
사자死者들의 영토에 밤이 도래한다
창가를 비추던 달빛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기억을 쓸던 달빛도 순간 사라지지만
내 기억 속 한 사람이 상흔처럼 되살아난다
그는 지금 저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지만
한때 그의 중심에 박아놓은 수많은 옹이들
이젠 어떤 참회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 안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힐 때까지
달의 안부를 오래도록 묻고 있다
(박현솔·시인)
+ 아내의 초승달

아차산 야간등산
하산 길

아스라이 동녘 하늘에
초승달 하나

선녀의 눈썹인가
가늘고 길게 굽어진
저 숨막히게 예쁜 것.

늦은 귀가의 남편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아내

별빛 맑은 눈동자는
평화로이 감겨 있는데

바로 그 위에
초승달 두 개 떠 있네

만지면 사르르 부서질세라
새끼손가락 끝으로

조심조심 쓰다듬어 보는
한 쌍의 아미(蛾眉).

나는
행복에 겨운 나무꾼.
(정연복,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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