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눈을 위한 시

눈을 위한 시

유하

눈이 내린다 눈빛이 내린다
난 멀디먼 눈길 뒤에서 굴뚝새처럼 헤매었다
눈물 다 흘리고 아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 무심한 눈발 그때 알아버렸다
컴컴하게 눈먼 하늘이 각혈하는 눈보라가
두고두고 이 세상 내 험한 눈길 속으로 가져다줄 눈빛을
그 눈시린 고통과 황홀의 눈빛을 그 후로
난 오래도록 잠들어 있었다 꿈속에서도 깨지 마라
깨지 마라 눈은 쏟아지고 눈뜨면 감은 눈 위로
거대한 설원이 기다림처럼 쌓이는 꿈을 꾸는 나를 보았다
아, 눈과 눈의 사랑 난 기어이 깨어났다
이 천지의 가믈고 가믄 숨소리 눈보라가
내 무거운 눈꺼풀을 벗겨갔다 난 보았다
그 무수한 눈송이가 무수한 눈물로 바뀌는 것을
눈은 땅으로 곤두박질치지만
눈물은 마침내 허공에 설원을 이룬다
눈발과 눈물의 가슴 시린 부딪침, 사랑
눈이 쌓인다 눈빛이 쌓인다 밤새
나는 잠들지 못하리라 저 황홀한 눈빛이
내 눈에 영원한 고통을 족쇄 채웠다 눈이 펑펑 내린다
나는 눈빛 쌓인 설원을 저물도록 떠돌아야 하리라
눈은 녹지만 끝끝내 당신, 눈빛은 녹지 않는 설원을
눈이 내린다 눈물이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