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일 금요일

꽃잎 베개

꽃잎 베개

어젯밤 세찬 비바람에
담 바깥으로 얼굴 내민 능소화
꽃잎이 속절없다
萬古처럼 기다렸던 마음보다
지는 세월이 찰라 같다
빗자루 들고 한데 쓸어 모았더니
제법 두둑하니 솟아올랐다
마당에 작은 동산이 생겼다
하루아침에 꽃잎 베개를 선물 받았다
초록의 풀잎으로 이부자리를 펴고
꽃잎으로
베개 같이 하고 누웠으니
붉은 꽃향기 묻어날 터인데
당신과 눈 맞추고 입술 나누어
한 잠 자고 나면
우리가 능소화 꽃으로 필까
분홍빛의 뜨거운 살결을 얻을까
나뭇가지 하나에 같이 붙어 있어서
모진 폭풍우를 견뎌낼 수 있을까
시들지 않는 꽃잎이 있어서
당신의 팔을 무릎을 베고 눕는다
당신이 꽃 닮은 줄 진작 알아서
당신에게 나를 얹고
적멸처럼 잠들고 싶다
그러니 꽃 지면 절대로 밟지 말아라
떨어진 꽃 한 아름
머리에 베고 누워서
능소화 같은 당신 이름 부르면
한 세상 넉넉하게 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