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참회(懺悔)

그대 처음 만난 날 나, 기억합니다
먼 길 떠나 오래된 어느 집 수은등 불빛에
취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그대
그때 나는 사랑을 알지 못했고
자신을 부정하고 부인하고 거부하였습니다
그대 부끄러움 무릅쓰고
나에게 달려왔던 그 먼길 만큼이나
나, 그대 향하여 가는 길
멈칫거리며 주저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대하고 걸어갔던 소나무 오솔길이나
바닷가 모래밭 짙푸른 길에서
내가 버린 나를 발길로 툭툭 차 보았습니다
불신으로 깨어지기 쉬운 나의 마음은
머리에 얹어 놓은 작은 물항아리였나 봅니다
그대의 아름다운 영혼을 더럽히고
파헤치다가 도망간 나, 무릎 끓고 용서를 빕니다
나, 그대에게 던진 한 마디의 말과 글로
눈과 귀를 이제껏 속여왔으므로
유황불에 불타는 나를 보았습니다
나, 두려워하며 참회하고자 합니다
그대의 탄식과 한숨을 받아주지 못하고
그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화로 가득찬 나는 언제나 불의(不義)요
불순(不純)이었습니다 나,
그대앞에 가을산 나무처럼 참회하고자 합니다
내몸에서 핏빛으로 단풍 든 다음
낙엽처럼 눈물 흘리겠습니다
그러면 알아주소서 나 이렇게 겸허하게
기도하며 그대에게 나아가니
그대에게 닿을 수 있도록 굳게 닫아둔 문
열어주신다면 순백으로 곧추 서는
겨울나무가 보이는
그곳에서 다시 뵙기를 청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