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8일 수요일

폭설,그후 -정일근-

겨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폭설을 만났습니다
순식간에 길은 끊어지고, 눈 속에 갇혀
나는 겨울나무처럼 서 있었습니다
아득함의 경계는 어디인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백색의 화엄 속에서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잃고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대에게로 가는 길이 모두 지워진 뒤
그대가 나에게 얼마나 그리운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 놓인 그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편지..정일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