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정윤목의 ´후회´ 외


<후회에 관한 시 모음> 정윤목의 ´후회´ 외

+ 후회

오늘도 더 사랑치 못하였네
더 그윽한 관심 눈길 주지 못하였네
그 아이를 뜨거이 더 안아주지 못하였네
한 걸음 한 걸음 모든 걸음걸음 사랑의 징검다리
선선히 놓아주지 못하였네

눈물
후회로운 하루 결산

그러나
내일 다시 태양은 높이 떠오르리니

눈물
가슴속 켜켜이 심어 살아갑니다
(정윤목·시인)
+ 후회

꽃은
내 앞에
환히 웃고 있는데
가시 찔릴까
가슴 대지 못 하고
서성이다가

꽃은
저만치 가고
가슴은
찔린 아픔 보다
더 큽니다
(손상근·시인)
+ 후회

때는
이미
늦었지만
같은 일
되풀이
하지 않을

교훈은 남긴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후회

세상 구경하고 싶은 참외
어느 날 지나가는 고슴도치 등에 업혀
가시에 찔리는 아픔 참고
큰 세상 요리하려 길을 떠났다

얼마 후 그는 발가벗기고
고슴도치 가족 식사 후
달콤한 후식 되었다
(김종익·시인)
+ 후회

능금이
그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지는
가을은 황홀하다.
매달리지 않고
왜 미련 없이 떠나가는가.
태양이
그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지는
황혼은 아름답다.
식지 않고
왜 바다 속으로 잠기는가.
지상에 떨어져
꺼지지 않고 잠드는
불꽃이여,
우리도 능금처럼 태양처럼
스스로 떠날 수는 없는 것인가.
가장 찬란하게 잠드는 별빛처럼
잊을 수는 없는 것인가.
버릴 수는 없는 것인가.
(오세영·시인, 1942-)
+ 후회

해준 것 없구나
사랑이여
반지도 팔찌도
옷도 구두고
집도 자동차도
해주지 못했구나
그대 목마를 때
한 종지 물만 건네주었구나
그대 눈시울 젖을 때
입술만 대어 닦아주었구나
속절없는
사랑이라는 말만
사랑이라는 말만
들려주고 또 들려주었구나
(나해철·의사 시인, 1956-)
+ 어떤 후회

물건이든
마음이든
무조건 주는 걸 좋아했고
남에게 주는 기쁨 모여야만
행복이 된다고 생각했어

어느 날 곰곰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더라구

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 습성이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구속하고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함을
부끄럽게 깨달았어

주는 일에 숨어 따르는
허영과 자만심을
경계하라던 그대의 말을
다시 기억했어

남을 떠먹이는 일에
밤낮으로 바쁘기 전에
자신도 떠먹일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지녀야 한다던 그대의 말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기억했어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맨 날 허탕이다

노는 날이 내 앞에 버티고 서면
나는 조급증에 휘말려 들뜨고 만다.
우선 쉬는 날짜에 해야 할 일을 접목시키고
자투리를 찾아본다.
이를테면
노는 시간과 일할 시간을 맞대보는 거다.
그런데 언제나 한결같이
일할 시간의 키가 더 크다는 것에 짜증이 난다.
짧은 연휴라든가 긴 방학에도 늘
하고 싶은 일들이 줄줄이 고개를 들고
앞다투기에 열 오르다 보면
강단지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흔들리던 마음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
이것도 저것도 이룬 것 없이 시간만 거덜나고
그 자리에 허탈만 무성하게 자란다.
노는 날만 되면
친구 놈들 할 일 없이 빈둥대는데
나는 할 일에 깔려 캑캑대며 허덕이다가
결국 빈손 툴툴 털고 만다.
이룬 것 없는 빈 껍질만 뎅그렇게 남아
또 다른 노는 날에 기대를 걸어놓고
슬그머니 꽁무니 내리고 만다.
(돌샘 이길옥·시인)
+ 후회

동생이 보내준 편지를 읽으면
헤아림 없이 보낸
지난날들이 아프다.

이 아픈 날들이 하나, 둘...
나에게로 밀려와서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
빈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비어 있음은 순수한 것인가
사람들은 마음을 비우면서
욕심을 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욕심으로
마음 한 구석 비우지 못하고 살아온 나.

아, 나는 슬프다.
이제 절반의 내 생애도 덧없이 가버렸으니
이 슬픔,
뒤늦은 뉘우침에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후회하고
후회한다.

내일
또 내일의 후회를 위하여.
(이풍호·재미 시인, 충남 예산 출생)
+ 후회

하루가 안녕 하며 가는 모습이
이렇게 슬픈 줄 몰랐어요

지는 해도 아쉬워 노을이 되듯
저마다의 마음속
고운 빛깔로 있는 사람에게
아끼지 말고 듬뿍듬뿍 전해야겠어요

정말 고맙다는 말
정말 사랑한다는 말
보낸 후에야
하지 못했음을 아파하네요
(최영선·시인)
+ 후회는 말자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는다.

매일 아침 시 산책을 하기 위해서다
정든 임 마주치면
눈인사로 대신하고
동행이 없어 수다 없어 고요하다

아차!
커피가 있었지
무엇에 몰두했던지 옆에 커피 향을
잊고 있다가
그만 실수로 커피를 쏟아버렸다
아깝지만 어쩌겠나.
커피뿐 아니라 매사가 잠깐 실수 쏟아버린 물인 걸

흐르는 물은 후회하지 않는다.
이미
쏟아버린 물을 아깝다 하지 말자

거듭하는 실수
인생은 미완성이 아니던가.
(하영순·시인)
+ 후회

될수록 적게 후회하는 사람이 되라.

교장이 되어 첫번째 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에게 큰소리 쳐놓고 점심 식사시간에 소주 몇 잔 급하게 취한 나머지 얼마 전 들어온 원고료 봉투에서 만 원 짜리 한 장씩 꺼내어 교직원이든 아이들이든 또 젊은 여자 학부형이든 눈에 띄는 대로 나눠주면서 호기를 부려보다.

그까짓 징그러운 돈 나도 한번 흔전만전 써보자 그랬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바람결에 돈을 날려보내며 깔깔거리듯 장난 삼아 그랬을지도 모르고 좀은 과하게 들어온 원고료 아무래도 군시러워 나눠 쓰자는 허장성세가 발동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방바닥에 쓰러져 자다가 새벽녘 목말라 물을 마시러 일어나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 막급한 밤이 지새기 전에 벌써 뱃속은 술 때문에 쓰리고 가슴은 후회로 쓰리다.

될수록 적게 후회하는 사람이 되라.
(나태주·시인, 1945-)
+ 후회

탁주 심부름 잦던 태곳적
보릿대 빨대 삼아
허기져 구시렁대는 내 뱃속 먼저 달래고
분명 고자질할 것 같은 주전자
냇물로 입막음했어야 했다

한 대접 드신 올챙이 아빠
미적지근한 헛기침 끝에
애먼 풋고추만 씹어
침묵이 오독오독 흐르던 툇마루
왜 그렇게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심부름만큼 주량도 늘어
싹수가 노랗더니
술에게 되술래잡혀
휘청휘청 끌려온 인생길
아!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라고

팔순 다 채우지 못하고
숟가락 놓으실 줄 알았더라면
진작 반주라도 톱톱하게 올려드릴 걸
저승 살이 맨송맨송해 어떻게 버티시는지
(권오범·시인)
+ 후회

그분이 살아 계실 때
봄이 오면 호박 심으러 가시고
강낭콩 심으러 가시고
가뭄이 오면 물 주러 가시고,

여름이 오면 골파씨 사다 심으시고
매일매일 하루에도 두 번씩
노력하신 것만큼 수확은, 씨에도 못 미치는 것을
어쩌면 그렇게 정성을 다하실까?

나는 애써 만류했지만
날마다 봄마다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헛수고

고인이 된 지금 나는 어머니가 너무도 그리워
그 밭을 처음 찾아가 보았다.
산밑에 두세 평되는 메마른 땅

나는 왜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이 길을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나.....!

ː어쩌면 그렇게 한번도ː

어머니의 취미 생활을 이해 못하고
나는 왜 그렇게 만류했을까
어머니.....
(이월순·시인, 1937-)
+ 후회되는 일

입시철이 되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그는 끈질기에 나를 따라잡는다
그것도 아픈 가슴으로

그날도 오늘처럼
가시만 남은 장미넝쿨 헤치며
눈발이 날리는 아침이었다

갓 시집 온 새색시였던 내가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대문 앞에 나와
경사진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그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들어오는 때였다

복음교회 쪽에서 내려오던
십구세 정도의 한 소년이
뜻밖에도
밥이 있으면 조금 달라고 했다

아침을 짓지 않아 밥이 없다는 나의 말과 함께
그는 벌써 그이가 내려간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는 분명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집을 나와 거리에서 방황하는 모습이었는데
몇 끼를 굶은 눈빛이었는데
밥이 없으면 짜장면 값이라도 줄 수 있었는데
(구순자·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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