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8일 월요일

도벽(盜癖)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을
훔치는 사내가 있다
구절초에게서는
소박한 순정의 향기를 훔치고
참대에게서는
매서운 직립의 뜻을 훔치고
당신에게서는
독(獨)한 천년 동안의 마음을
훔치는 사내가 있다
그짓도 오래 하다가는
감옥 동굴에 갇히는
도벽(盜癖)이 된다
허락도 없이 훔쳐갔으니
이제 꽃 핀다 할지라도
향기 없겠다
대 높이 자란다 할지라도
속이 텅 비었겠다
당신 돌아선다 할지라도
백치, 천치 되겠다
저렇게 반짝 반짝 빛나는
금강석을 돌려주고 싶지 않아
내 속에 가득 채워두었으니
나 모르게 누군가
곳간의 보물 훔쳐가는
도적 있을 법 하겠다
아침에 일어나
당신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길에
마주치는 것마다
내 눈이 근질근질해지는
이 피할 수 없는 도벽(盜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