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8일 월요일

연민

연민 / 정유찬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가슴 시린 사람
목구멍에 걸린 뜨거운 눈물 같은 사람
나의 다정함이 모자라 늘 쓸쓸하였던 사람
정겹게 숱한 밤을 지새우고 싶었지만 말다툼만 하였던 사람
내 삶의 허점마냥 커다랗게 뚫린 구멍
이유 없이 가렵고 따가운 상처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고도 더 주고픈 대상이며
내가 내 안의 고독을 사랑하는 만큼 사랑해온 영혼아

지나온 날들은 우습다
자존심이 상처받아 홀로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다가
결국 위로받지도 못하면서 멀리 떨어져 서로의 친밀감만 소멸시키고
어차피 함께해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며 수시로 도망치기 바빴다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숨었던 그 얼마나 한심했던 시간들인가
하지만 그때는 그냥 그러한 이유들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알 수 없는 서운함과 수치심과 자격지심과 두려움을 피해서
이리저리 숨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가끔 미쳤다
미쳐서 심술을 부려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파하면 그게 날 사랑하는 증거라며 속으로 좋아했다
그 사랑의 증거는 당신의 가슴을 퍼렇게 멍들게 하였고
나의 정신에 멍에를 씌워 혼탁한 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목마르고 숨차고 머리가 깨질듯 하였다
병든 짐승처럼 그토록 절망하였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 아닌지 알았던 적 없다
질투와 증오와 원망과 미움이 사랑의 일부인지 아닌지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 아닌지
상대방의 기분에 따라서도 잣대가 바뀌는 모호한 기준들을
한때는 자를 대고 붉은 선을 북북 긋듯이 모르면서 아는 척 했고
게다가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고 착각했으며 둘 다 오만이었다
어쩌면 그러한 한계 착오적 오만함으로 인하여
애매하게 그어진 붉은 선을 수시로 넘나들었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모든 슬픔이 허구였고 절망이 가짜였더라도
사랑을 갈구하며 우울함 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거렸고
빛의 소멸을 알아차리듯 사랑의 상실감을 대면할 때는 아팠다
그것조차 신기루 같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허상의 느낌이며 감정이고
지나면 별일 아니라는 생각을 하여도 아플 땐 아프다
통증을 잘 참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우리의 연약함은 고통에 면역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조금 익숙해질 뿐

삶이 길고 지루한 악몽처럼 괴롭혀도
행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새날을 살려고 한다
그 기대와 희망이 클수록 환상이 되고
우리가 그 환상만큼 불쌍하며 가련한 존재일지라도
익숙해진 통증을 안고 사랑이라고 믿는 느낌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보자
허전한 내 손을 잡아다오
사랑하기에 그리운지 그립기에 사랑하는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당신이 그립고도 그립다

내 손을 잡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