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9일 토요일

장미, 크레바스

다 늦은 저녁
골목길 돌아 돌아 나오는데
어스름 불빛 속
불한당 같은 얼굴로 걸어나와
꺾어봐 꺾어봐 건들거리며
불쑥, 협박처럼 서있던
장미 그대여.

사람의 볼 안 쪽으로 다가서지 않고
눈으로도 건너오지 않아
스스로를 붉게 붉게 자해하며
공갈을 일삼던 이여.

골목 어디쯤 치에서
사람 지켜섰다가
기척도 없이 엄습.
갈비뼈와 명치끝이 서늘하도록
등짝을 후려치는,
느닷없는 습격의 연속
이것이 사랑이었거니

소스라치게 놀라
골목길 돌아 돌아 나오는데
한참이나 어지럽고도 먹먹한 귀가
에베레스트 고지의 고산병 되어
혼 빠지는,
이것이 사랑이었거니

이토록 아름답고도 위태한
발치 아래의 모든 길들이
아찔한 크레바스의 추락지점 인 것을

그 곳에서 꽃은 붉게도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