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조희선의 시 ´하느님 바보´ 외


<하느님을 묵상하는 시 모음>

조희선의 시 ´하느님 바보´ 외

+ 하느님 바보

높은 것
낮은 것도 구별할 줄 모르고
좋은 것
싫은 것도 골라낼 줄 모르고
손해
이익 따위 계산할 줄 모르고
네 편
내 편도 만들 줄 모르는
하느님은 바보
오직 하나,
사랑만 아시는
사랑밖에 모르는 하느님, 바보!
(조희선·시인)

+ 채송화에게는

베란다에서 키우는 작은 채송화
나를 하느님인 줄 안다

비 좀 내려 주세요
바람 좀 불게 해 주세요

가끔 나타나
물조리개로 흠뻑
비도 내려 주고

창을 활짝 열어
시원한 바람도 불게 하는
채송화에게는 내가 하느님이다
(신복순·시인)

+ 풀잎 위의 하느님

새벽마다 만납니다
아주 작은 하느님

풍납동 한강 시민공원 벤치 곁에서
지구의 맨살 가린 풀잎 내려다보면
둥글게 올라앉은 하느님의 속살이 그냥 투명해

초록의 풀잎 위에서 사십니다
요즘 하느님은

한 방울의 몸뚱이 안에 우주를 담고
내 온몸 빨아들이는 눈빛 속으로 저릿저릿 침몰하여
나 또한 잠시 작은 하느님이 됩니다

무거운 것들 다 내려놓고
내 영혼이 가뿐해지면
실핏줄 속으로 초록의 피 빠르게 흘러가고
온 세상의 문이 눈앞에서 소리 없이 열립니다.
(정성수)

+ 하늘 위의 창문

방패연을 높이높이
띄웠다

하늘 위에 커다란
창문이 하나
생겼다

저 창문을 열면
하늘 위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다 내다볼 수 있겠다
하느님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훤히 다 보이겠다

방패연은 좋겠다
저러다
운이 좋으면
하느님도 만날 수 있겠다
(안도현·시인)

+ 창(窓)

자기를 통해서 모든 다른 것들을 보여준다.
자기는 거의 不在에 가깝다.
부재를 통해 모든 있는 것들을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이 넒이 속에 들어오지 않는 거란 없다.
하늘과,
그 품에서 잘 노는 천체들과,
공중에 뿌리내린 새들,
자꾸자꾸 땅들을 새로 낳는 바다와,
땅 위의 가장 낡은 크고 작은 보나파르트들과.....
눈들이 자기를 통해 다른 것들을 바라보지 않을 때 외로워하는 이건 한없이 투명하고 넓다.
聖者를 비추는 하느님과 같다.
(정현종·시인)

+ 하느님께서 냉장고를 갖고 계시다면

하느님께서 냉장고를 갖고 계시다면,
당신 사진이 그 위에 붙어 있을 거예요.
하느님께서 지갑을 갖고 계시다면,
당신 사진이 그 안에 들어 있을 거구요.
하느님께서는 봄이면 당신에게 꽃을 보내주고,
매일 아침 해님을 보여주죠.
그분은 우주 어디서든 살 수 있으시지만,
바로 당신 마음 안에 거처를 정하셨답니다.
명심하세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푹 빠져 계셔요!
고통 없는 날들을,
슬픔 없는 웃음을,
비를 동반하지 않는 햇살을,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를 견뎌낼 힘을,
눈물에 대한 위안을,
앞날을 열어줄 빛을
당신에게 주실 거예요.
(작자 미상)

+ 하느님이신 당신에게

당신을 하느님으로 안다는 것
그것은 다만
우리가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사유와 관념
그 너머
영원한 세계
그곳에 계시는 까닭입니다.
(조만나스)

+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숫자에 밝지 못해도
어려운 공식을 외우지 못해도
하늘의 별을 셀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외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해도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인류의 시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몰라도
색깔 다른 콩 두 개가
어떤 모양의 콩을 만들어내는지
알 수 없어도
아름드리 나무를 안아보고
놀랄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조각칼을 익숙하게 다루지 못해도
하늘의 구름이 무슨 모양인지
상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도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하나 없어도
새와 함께 휘파람을 불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돈 세는 것이 서툴고,
물정에 어수룩해도
음식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줄 서기를 잘 못해서
매번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럴싸한 말로 다른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해도
세상의 주인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글쓰기를 조금 못해도
책 읽기가 조금 서툴어도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뜻을 물을 수 있고
헤아릴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기보다
용서해줄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반대하는´ 특기를 갖기보다
´찬성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서로 믿어주고,
서로 희망이 되어주고
서로 사랑할 줄 안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하느님을 닮았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철·신부)

+ 민중의 아버지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나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 먹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나님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김흥겸, 1961-199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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