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1일 목요일
배정순의 ´할머니와 나´ 외
<할머니 동시 모음> 배정순의 ´할머니와 나´ 외
+ 할머니와 나
우물의 깊이를 보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수돗물의 속도를 만지며
삽니다 나는.
고무신 신고 땅의 감촉을 느끼며
산과 들을 걸었습니다 할머니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들판을
건너다보며 삽니다 나는.
내가 못 보고 느낀
우물의 깊이와 땅의 감촉을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가르쳐줍니다 어머니는
(배정순·아동문학가, 1965-)
+ 할머니는 바늘구멍으로
할머니가 들여다보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잖는데
할머니 눈에는 다 보이나 보다.
어둠 속에서도
실끝을 곧게 세우고는
바늘에 소리를 다는
할머니 손
밤에 보는 할머니의 손은 희다.
낮보다도 밝다.
할머니가 듣고 있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소문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잖는데
할머니 귀에는 다 들리나 보다.
(윤수천·아동문학가, 1942-)
+ 시간의 탑
할머니,
세월이 흘러
어디로
훌쩍 가버렸는지 모른다 하셨지요?
차곡차곡
쌓여서
이모도 되고
고모도 되고
작은엄마도 되고
차곡차곡
쌓여서
엄마도 되고
며느리도 되고
외할머니도 되었잖아요.
우리 곁에
주춧돌처럼 앉아 계신
할머니가 그 시간의 탑이지요.
(유미희·아동문학가, 충남 서산 출생)
+ ㄱ자
할머니 허리가 자꾸 굽어지더니
마침내 ㄱ자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귀도 허리 굽혀
손주의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봅니다.
손주의
울음소리를 가까이서 업어 줍니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우리 할머니
자나깨나 할머니는
성경책만 읽으신다.
감자밭 감자 캐듯
책 이랑을 더듬으며
굵다란
감자알 같은
굵은 말씀 캐내신다.
가다가는 한번씩
그 이랑 되돌아가
이삭 감자 주어내듯
놓친 말씀 다시 줍고
마음의
광주리 찬 듯
눈을 지긋 감으신다.
(서재환·아동문학가, 1961-)
+ 할머니 입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 넣어 주실 때마다
할머니도
아-
아-
입을 크게 벌리지요.
할머니 입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할머니를 보면
참 우스워요.
세 살배기 내 동생이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릴 때마다
할머니도
내 동생을 따라
입을 우물우물 하지요.
할머니 입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윤동재·아동문학가)
+ 우리 할머니
우리 할머니 입은
꽃잎 오므린 호박꽃 같아요
호박꽃 속에서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
들어 보셨어요?
나는 매일 들어요
우리 할머니 입 속에는
벌 한 마리 살고 있거든요
윙윙윙……
남들은 우리 할머니 말
도대체 모르겠대요
그래도 난 다 알아요
뭐라고 하시는지
느낌으로 다 알아요
(김애란·아동문학가)
+ 할머니 오실 때
할머니 우리 집 오실 때
시골 텃밭의 채소들도 따라왔다
플라스틱 상자에 상추가 자라고
깨진 항아리에는 고추도 심어졌다.
˝상추와 고추가 참 좋네요.˝
보는 사람마다 부러워한다.
할머니 우리 집 오실 때
시골에서 길들인 입맛도 따라왔다.
상추쌈에 풋고추가 상에 오르고
구수한 숭늉도 한몫을 한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최고예요.˝
아버지가 엄지를 세워 보인다.
(김종상·아동문학가)
+ 우리들의 기도
아빠의 어머니는
날마다 날마다
하느님께 기도하지요
우리들이 바위처럼 살 수 있도록
엄마의 어머니는
날마다 날마다
부처님께 기도하지요
우리들이 꽃처럼 살 수 있도록
우리들은
일주일마다
할머니 댁에 가지요
할머니는
그게 바로
우리들의 기도래요.
(서금복·아동문학가)
+ 조심조심
할머니는
한 번 쓰고 버리는
비닐봉지 싫대요
힘이 없는
종이가방 싫대요
보자기에 감자
보자기에 옥수수
보자기에 참기름
무엇이든 보자기에
참기름은 첫째네
옥수수는 막내네
감자는 둘째네
보자기에 한가득
보자기를 이고서
어느 한 쪽
치우치지 않게
조, 심, 조, 심
(김미희·아동문학가, 1971-)
+ 그림 그리는 할머니
봄이 되면 할머니는
텃밭에 그림을 시작한다
붓 대신 호미로
그림을 그린다
긴 고랑으로
짧은 두둑으로
구도를 잡은 후
초록 빨강 흰색으로
나누어 칠하면
텃밭에는
아욱과 상추 양배추가 그려져
맛깔스런
할머니 그림이 된다.
(최정심·아동문학가)
+ 서로 다른 걱정
서울 우리집에 오시면
온종일 안절부절못하시는 할머니
텃밭에 있는
배추, 고추는 잘 크는지
옆집에 맡겨둔 똥개
몽실이는 밥 잘 먹는지
할아버지 무덤에
잡초가 돋은 건 아닌지
내내 걱정이시다.
할머니 걱정에 못 이겨
시골집으로 보내드리면
엄마, 아빠는 또 그때부터
홀로 계신 할머니 걱정뿐이다.
(장지현·아동문학가)
+ 할머니의 평화
시골 할머니집 마당에
칼바람이 몰려오자,
나뭇가지들이
발발발
빨랫줄이
덜덜덜
개밥그릇이
달달달.
밤새
마당 구석구석을
도둑처럼 쏘다녀도,
방 안의 할머니
코고는 소리는
꿈쩍도 안 한다.
(정은미·아동문학가)
+ 이상하다
외할머니가 고사리와 두릅을
엄마한테 슬며시 건넵니다.
˝가서 나물 해 먹어라.
조금이라서 미안타.˝
˝만날 다리 아프다면서
산에는 뭐하러 가요.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요.˝
늘 주면서도
외할머니는 미안해하고
늘 받으면서도 엄마는 큰소리칩니다.
(최종득·아동문학가)
+ 골목길
기운 담장 아래
할머니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오래 사귄 친구처럼
지팡이를 끌어안고 있다
이불인 듯
온몸에
얇은 봄볕을 덮고 있다
전봇대 그림자가
살그머니 다가가
할머니 부은 발등 쓰다듬고 있다
(곽해룡·아동문학가)
+ 폐지 줍는 할머니
등 굽은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간다.
리어카에 쌓인
폐지 더미
산봉우리처럼 솟았다.
산을 끌고 가는
할머니 굽은 등은
또 다른 산
끙끙, 작은 산이
큰 산을 끌고 간다.
(박방희·아동문학가, 1946-)
+ 할머니 방
창문 밖
옷 벗고 서 있는
앙상한 벚나무 바라보며
내년 봄에도
벚꽃을 볼 수 있으려나
중얼거리시던 할머니
겨울 내내
쿨룩쿨룩
내 마음 울컥울컥 흔들더니
봄 햇살 아지랑이에
기침까지 싣고
하늘로 가셨다
활짝 핀 벚꽃들
빈 방 기웃거리며
할머니 찾는다
(정승혜·아동문학가)
+ 할머니 방
˝병수야, 이거 할머니 방에 갖다 놔라.˝
할머니가 늘 앉아 있던 자리,
텔레비전 보며 가랑가랑 기침하던
그 자리에
조용히 감자 소쿠리를 두고 나온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던 방
말린 고추, 콩자루, 쌀가마니가
그 방에 대신 앉아 있어도
할머니 방은 그대로
할머니 방이다.
(박혜선·아동문학가, 1962-)
+ 마지막 이사
치매에 걸린
우리 할머니
몇 년 전부터
큰집
작은집
우리 집으로
넉 달마다
짐 싸서
이사 다니더니
며칠 전
하늘나라로
마지막 이사를 했다
이제 할머니
더 이상
짐 쌀 일 없겠다.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상투적 신앙´ 외 12편의 시"> 조희선의 ´하느님 바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