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7일 일요일

시레기국을 먹으며

마음 흐리고 어두워
아침부터 드러누운 날
마루 천장에 매달려 있는
시레기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저것이 상처 같고 비명 같다
버림 받고 외면 당해
절벽의 끝까지 비껴앉은 것들이
핏기 하나 없이 뼈만 앙상하다
삐적 마른 내 아버지와 어머니
팔다리 같은
이파리 거둘 일만 남았다
푸릇푸릇 했던 청춘을 불러들이려고
목 매달았던 밧줄을 풀고
물 속에 던져 넣었다
부풀어 둥실 떠오르는 시체
불을 손에 들었으니
저 시레기가
똥의 재가 될 때까지
뿌려줄 한 톨의 씨앗이 될 때까지
나의 혀를, 목구멍을 태우고
정신을, 혼을 뜨겁게 태워버려라
그래서 다시 속 단단하게 여물은
배추나 무로 태어나라고
희망이 불쑥 일어나라고
절망 같은 시레기를 건져 먹는다
나를 만들어 놓고
순식간에 시들어버린
이파리 같은 몸뚱이 같은
생을 훌훌 불며 입속으로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