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일 화요일

내가 읽기 전엔 하나의 기호였다

스무 살 때 나는 기호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였다
길을 가며 수많은 기호들을 만난다
표지판 벽화 신호등 현란한 광고들, 가끔
반구형의 내 왼쪽 뇌에 갸름한 물방울이 인지된다
갸름한 물방울의 기호는 나를 한 곳으로만 떠나게 한다
화살표는 나를 돌고 돌고 돌게 한다
동그라미를 따라 멈추기도 하고 서기도 한다
그러한 기호들이 간혹
분자운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벽화에 그려져 있던 기호들에서 색감과 질감 패턴들이
쏟아져나오며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노랑돔이 되어 기호의 바다에서
체온이 없는 기호들과 섞여 헤엄치고 있다
내가 읽어 주기 전엔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움직이는 그림자들일 뿐이다
갸름한 물방울의 기호에
후후 숨을 불어넣으며 <강>이라고 읽어 본다
허연 모래배를 드러내고 한동안 흐르지 못하고 있던
스무 살 나를 단번에 거꾸러뜨렸던
아무르 강이 넘쳐 출렁이며 우르르 흐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