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1일 일요일

비가 온 뒤에

비가 온 뒤에
무너지는 것 억수로 많다
비슬산 높게 쌓은 축대가
유가사 절 세운 목탁 소리가
도통바위 가부좌한 참선이
대견봉 솟아오른 어깨가
남릉에 새겨넣은 비문이
물로 쌓은 수성골이 무너지고
慢春의 진달래 꽃잎이
直指의 용소 폭포가
風과 光의 능선이 무너지고
낙동강 밟고 가는 것이라
문득 뒤돌아 보면 절벽이다
원래로 회귀하는 길이라
진흙으로 세운 靑春이
而立의 곧은 허리가
不惑의 뻣뻣한 목이 부러지고
知命의 입이 뜯겨지고
耳順으로 문닫을 귀가
古稀로 감았던 눈이
마침내 쑥 하고 무너질 것이다
비가 온 뒤에
아아, 내가 무너질 것이다
비가 그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으켜 세울 것이 억수로 많다
무너져 내린 나를
차곡차곡 바로 쌓아놓았더니
비슬산이 벌떡 일어났다
오늘 하늘의 낯빛이 창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