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일 월요일

마지막 편지 -안도현-

내 사는 마을 쪽에
쥐똥 같은 불빛 멀리 가물거리거든
사랑이여
이 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인 줄 알아라
우리가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헤어져 남남으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듯
서로 다른 길이 되어 가더라도
어둠은 또 이불이 되어
우리를 덮고 슬픔도 가려 주리라

그대 진정 나를 사랑하거든
사랑했었다는 그 말은 하지 말라
그대가 뜨락에 혼자 서 있더라도
등 뒤로 지는 잎들을
내게 보여 주지는 말고
잠들지 못하는 밤
그대의 외딴집 창문이 덜컹댄다 해도
행여 내가 바람되어 두드리는 소리로
여기지 말라

모든 것을 내주고도
알 수 없는 그윽한 기쁨에
돌아앉아 몸을 떠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이제 이 세상을 나누어 껴안고
우리는 괴로워하리라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말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