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8일 목요일

비 오는 날에 쓰는 편지

님이시여!
세상은 퍼 담아 낼수록
왜 이다지 힘이 들고 두려기만 하답니까.
오늘같이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이 비가 씻어져 내리는 마알간 길을 따라
님이 거하시는 그 평안의 나라까지
아무 생각 없이 마냥 걸어 가고 싶습니다

해질녘 쯤이면 당도를 할까요
굴뚝에는 뽀오얀 저녁 연기가 보골보골 솟아 오르고
멀리서부터 옥수수 삶는 내음이 먼저 달려 나와 반기는 곳
서둘러 울도 없는 움막의 뜨락을 가로 지르면
추녀 끝으로 빗줄기가 음악처럼 흘러 내리고
아련했던 토담집 향내음에 풀썩 안기어 들고 싶은 곳
한 사나흘 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곳에서 하냥 요요롭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념들 속에서
아무리 걸러도 걸러도 걸러진 만큼이나
다른 한 편에서는 더 많은 것들이
어느 새 부화가 되어 삐약삐약거리는 소리들
이렇게 혼돈의 세상에서는
어디 한 곳 편안히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내게 주어진 삶의 분량이
아무래도 이 산더미같은 거름을
저 불모지 편으로 다 옮겨야 하는 숙제인 것 같아요
정작 그 것을 알았더라면
애초부터 팔 걷어 부치고 작정이라도 했을 터인 즉
뒤 늦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울창한 나무잎 사이로 언뜻언뜻 지나 가는 하늘이
네겐 아직도 너무 멉니다.
그나마 내겐 아주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님을 향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있어
그나마 엉컬어진 삶에 비추어
한 가닥 실마리라도 쥐게 합니다.
한 사나흘 그렇게 유하다 돌아와
나머지 푹푹 ››은 거름을 더 늦기 전에
대형 포크레인 몇 대를 동원해서라도 해치워야겠습니다.

아, 또 막상 가려고 하니 그 사이 비가 그친 것 같습니다.
님이시여!
아무래도 사는 동안에는 원래 쉼표란 것이 없는 게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