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게 아무 것도 기대 해 본적이 없어
단지 네 존재를 기억할 수 있는 걸로 감사해 왔어
사실 네 존재를 무시해 왔는지도 몰라
화려한 조명받으며 떠 오르는 보름달에 박수 보내 왔었지
오늘 새벽길 어둠의 날개 드리운 길에
넌 어김없이 나타나 영롱한 새벽별과 함께 길을 밝히고 있었어
스무 살 겨울 성탄 전야 캐롤송을 불 때
명동 성모 병원 암동실 창문을 열고
말없이 겨울하늘 바라보던 창백한 여인처럼,
난 그녀의 초생달같은 아미에서 한 서사시를 읽을 수 있었어
이십 대의 내가 그려낼 수 없던 아리한 꿈이었어
찬바람 펑펑 쏟아지는 겨울 포도위에 떨어져 뒹굴던
젊은 커플들의 웃음 조각이 아니었어
하늘 건너, 시커먼 구름 너머,
웅웅 거리는 바다속 침묵으로 일어서는
초생달을 바라보는 서사시였어
다섯 자녀 축쳐진 가슴으로 키운
질기디 질긴 어머니의 젖줄이었어
오늘 새벽 초생달의 서사시를 껴안고 암으로 죽어가던
그녀의 파리한 얼굴속에 피어나던 수줍어 고운 아미를 그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