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3일 목요일

너에게 보내는 안부 -양현근-

1.
차마 詩가 되지 못한 생각들이
저녁 밥상을 물리자마자 스멀스멀
책장 위를 기어올라
컴퓨터 모니터 위에 정전기를 튀기다가
흥미없다는 듯 HB연필을 깎고 있다
요즘 연필은 왜 그리 잘 부러지는지
부끄러운 제목의 살점들이
눈처럼 얇게 저며지고 있다
네가 사는 곳에는 눈이 오느냐.
2.
사랑이라 그랬다
한때는 빗금무늬를 소용돌이쳤었지
눈도 오지 않는 겨울밤에
일곱 난장이가 꿈꾸던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자답하며
문풍지에 걸린 세월이
안부를 묻는다
그 곳에는 지금도 눈이 오느냐.
3.
꿈이 깊을수록 그림자가 곱다는 걸 안다
얼어붙은 생솔가지
손으로 툭툭 분질러가며
눈에 보이는 배경들에 익숙해져야 하리
이제는 잊어도 좋을
젖은 추억과도 기꺼이 악수하리
흐린 하늘이 지상의 얕은 곳을 찾아 내리고
오늘은 이 곳에도 큰 눈이 내릴 모양이다.
정녕 지금도 사랑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