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9일 일요일

진맥(診脈)

그때는 그랬다
털어내고 쓸어내고
비워낸 적 한 번도 없어
녹이 푸릇푸릇 돋아나고
곰팡이가 희끗희끗 피어나고
속으로 상처가 깊어졌는데
병명조차 모르던 때였다고
자리 깔고 시름 시름 앓아 누웠는데
목숨보다 더 귀한 몸이니
문밖에서
손목이나 잡아 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서(書) 하나 들고 침(針) 하나 들고
토굴에서 십여년 생활하였으니
하산해서 원(院)하나 차려놓고
용하다는 소문 내서는
혈(血)을 하나 잡고
오장육부 어디서 탈이 났는지
척, 하고 알아 보았다는데
지어준 약 몇 첩 달아먹으면
무슨 일 있었느냐며
쾌(快)를 부르며
방문 열고 걸어나왔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상에 나와서
간신히 숨 붙들고 있는
어린 풀들, 여린 가지들
불현듯 숨 놓을려고 하는
빚 많은 사람들, 벌 받은 짐승들
맥을 짚어 주고
공(空)으로 무(無)로
방바닥을 박차고 일어날
완쾌의 처방전을 써 주었으면
그랬으면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