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목요일

상자가 있다

향기로운 사과를
담아야 할 상자가 있는데
누군가에게 애틋한 마음을 전해줄
선물의 상자가 있는데
문득 받아서 열어 보니
저 작은 상자 속에
변이 들어있다
그 속에 구린내 나는 과일이 있다
먹으면 살과 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독이 되고 병이 되는
사과가 그 속에 있어서
한 입 베어 먹어보니
오장육부가 썩은 강물로 흐른다
종이로 만들어진 저 억의 사과를
다 먹어치우려면
부풀은 풍선으로 배가 터질 것이다
저것 먹는 순간
뱃속에서 똥오줌의 나무가
불쑥 자라날 것이다
뇌에서 피고름의 꽃이 필 것이다
혀에서 입술에서
가래 같은 열매가 익을 것이다
그 몸의 상자에서 곰팡이 피고
온통 눈이 매워
녹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이다
그 몸의 상자가
변으로 가득 찰 것이다
큰 난리의 변變이 일어날 것이므로
사과 대신에
시신으로 가득한 상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