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키 큰
항아리가 보이지 않는다
장에 간 아버지가
피땀 흘리며 지게에 지고 와
내가 밖으로 얼굴 내밀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항아리
몇 날 며칠 한 여름에
불을 때서 만든
장 가득 담아놓았는데
끼니 때마다 뚜껑 열고
한 두 그릇 잘도 떠 먹었는데
항아리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찬장에 종지만 가득하다
키 큰 우리 어머니 어디 가셨나
가슴에 시퍼런 금이 가고
발꿈치는 깨져 구멍이 난
항아리 어디에 치워버렸을까
그 속에 들어가 앉아 있노라면
한 없이 꿈꾸고 싶었던
어머니 뱃속 같은 항아리
언제 저리도 작아졌을까
항아리 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항아리가 없어졌다
어머니가 물 한 그릇 같이
키 작아져 버렸다
어머니, 그 안에 들어가실 수 있는
항아리 하나 사 드릴게요
그 옛날 같은 항아리 속에서
편히 새록새록 잠드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