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5일 토요일

안개빛 사랑 -다섯-



서른 여덟이나 된
여자가
그의 앞에선
스물 세살때처럼
부끄러웠다
스물 세살로 돌아가자니
망령 든 노파로
그에게 보일테고
서른 여덟의 행동을 하자니
겉늙은 여자로
그에게 보일것만 같아서
어색했다
내게 보여지는 그 사람도
스물 여덟이 아니고
마흔 살이 조금 넘었는데
십수년을 뚝 떼어버린채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떨어져 나가버린
십수년의 시간들은
낡고 두툼한 일기책처럼
각자의 책상서랍 속에서
각자의 빛깔로
잠들어 있는데
누구도 먼저
그 일기책을 펼쳐보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기를 보여달라는 것이
금기라서가 아니라
지난 일들이
너무도 하얗기 때문에
읽지 않아도
알기 때문에
그 하얀
십수년의 떨어져나간 시간을
우리는
그냥 버린 것인지 모른다
서로에게 있어서
우리의 나이 계산은
스물 셋 다음이
서른여덟이고,
스물 여덟 다음이
마흔셋이 된다
십수년을 뚝 떼어버리고
두 사람은 마주앉아
침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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