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6일 수요일

포도밭에 가서 앉다

포도밭에 가서 앉는다
포도나무의 무릎을 베고 눕는다
주렁 주렁 매달린 포도가
어머니 젖가슴 같다
포도나무가
팔을 내밀어 안는다
푸른 이파리 옷깃을 열어 젖히고
저마다 꺼내 놓으신
포도 한 송이를
배 고픈 어린 자식들이
한 입 깨물고 있구나
한 끼 양식이 되어
숨 붙어 있게 해준 저 달콤한 포도
소중한 마음의 즙이
입가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구나
어머니의 살이
알알이 검붉은 포도가 되었구나
밤새 몸 드러낸
홍수 같은 저것이
목까지 차오르는 저것이
어머니의 젖이다
강물처럼 흘러가다가
동쪽의 동네마다
서쪽의 마을마다 방방곡곡
어머니 같은
포도를 깨물었으면
울렁 울렁 바다를 이루고 있다가
우기에 비로 내려
충만한 젖으로
세상 축축하게 적셔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