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월요일

용혜원의 ˝꽃 피는 봄엔´ 외


<봄날의 사랑시 모음> 용혜원의 ˝꽃 피는 봄엔´ 외

+ 꽃 피는 봄엔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신나도록 필 때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
겨우내 목말랐던 입술을
촉촉한 이슬비로 적셔 주리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온몸에 생기가 나고
눈빛마저 촉촉해지니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피어
님에게 바치라 향기를 날리는데

아! 이 봄에
사랑하는 님이 없다면 어이하리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봄마중

그리움 깊어
노란 빈혈을 앓는
산수유꽃을 지났더니

봉분처럼 치장한
진달래 꽃무덤
못 다한 사랑얘기
속살거리고

솜털옷 벗는 백목련,
웃을 때 살짝 보이는
그 사람 송곳니 같아서
볼 때마다 눈이 부셔
실눈을 하게 되고

아이참,
(최원정·시인, 1958-)
+ 봄을 기다리는 그대에게

그대 마음에
봄이 온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자주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랑의 무게,

어깨를 짓누르던
네 삶의 무게

인내하는 마음에
봄이여, 오시리니

네 영혼에
눈부신 봄이 온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홍수희·시인)
+ 봄은 온다

봄은 온다
서러워 마라
겨울은
봄을 위하여 있는 것

잿빛으로 젖어있던
야윈 나뭇가지 사이로
수줍게 피어나는
따순 햇살을 보아

봄은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것
불러주지 않으면
오지 않는 것이야

사랑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 것
인내하며 가꾸어야
꽃이 되는 것이야

차디차게 얼어버린
가슴이라면
찾아보아 남몰래
움트며 설레는 봄을

키워보아 그
조그맣고 조그만 싹을
(홍수희·시인)
+ 봄꽃을 보니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다 지고 싶습니다
(김시천·시인, 1956-)
+ 다 당신입니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은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당신입니다.
(김용택·시인, 1948-)
+ 봄은

굳었던 관절이 부드러워지듯
봄은 가까이 더 깊숙이 들어왔다
걸음이 빨라지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는,
꿈꿀 준비가 되어 있는 자와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는
욕심 없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계절이다 봄은
오,
그 누가 첫사랑 같은 설렘 가득한 봄날에
희망으로 가는 통로를
행복으로 가는 첫 계단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집중할 수 없는 순수와 열정은 가라
거짓사랑도 가라
(이희숙·시인, 1964-)
+ 봄날, 사랑의 기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
큰 것보다도 작은 것이 좋다고,
많은 것보다도 적은 것이 좋다고,
높은 것보다도 낮은 것이 좋다고,
빠른 것보다도 느린 것이 좋다고.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소서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물이 차 오르게 하소서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안도현·시인, 1961-)
+ 목련 후기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복효근·시인, 1962-)
+ 봄날의 사랑 이야기

사랑은 장미처럼
활활 불타지 않아도 좋으리

사랑은 목련처럼
눈부시지 않아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봄의 들판의 제비꽃처럼

사람들의 눈에 안 띄게
작고 예쁘기만 해도 좋으리

우리의 사랑은 그저
수줍은 새색시인 듯

산 속 외딴곳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
같기만 해도 좋으리

이 세상 아무도 모르게
우리 둘만의 맘속에서만

살금살금 자라나는
사랑이면 좋으리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