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잡초가 되고 싶다
잡초(雜草)는 잡(雜)된 풀이다
뽑히고 밟히며 베던지는 천덕구니 풀이다
어느 짝에도 쓸모 없다며 내쫓기는 소박데기 풀이다
낯가림이라도 목매며 그리는
이름조차 지어받지 못한 애(愛)바라기 풀이다
그러나 잡초는 원망하지 않는다
아무 데나 몸을 뉘일 곳이면
하늘나라라 믿받들며
성그러운 사랑으로 앙가풀이를 꿈꾼다
그래
잡초는
고가도로 방호벽 패인 홈통
시멘트 건물 찢겨나간 틈바구니
다리기둥 감싸 안으며 널브러진 자갈 사이사이에도
푸른 생명을 불어넣는다
어리버리 여인처럼 뒷전만 맴돌다
허기지고 지친 몸을 주체못하고 주질러 앉는 나에게 다가와
푸른 안식(安息)을 안긴다
가슴살에 돋는 생채기를 덧덮는다
당신은 잡초 여인이다
당신은 사랑에게 뽑히고 밟히며 베던져졌다
뭉게진 가슴을 겨우 추스리고 일어서는 당신은
사랑에게 다시 또 뽑히고 밟히며 베던져졌다
그렇게 떠난 사랑에게
당신은 모지라진 가슴을 애써 감추며
잡초가 되고싶어요
또 한번 뽑히고 밟히며 베던져지길
하늘에 기원하고 있다
당신을 빼내치다 혹여 바람구멍이라도 뚫리고
헛헛한 갈증에 길이라도 잘못 디딜까
떠난 사랑 가슴에 심어줄
푸른 안식을 꿈꾸고 있다
난 당신을 애(愛)바라는 또다른 잡초이다
당신이 사랑을 향해 다가갈 때면
나는 당신에게 뽑히고 밟히며 베던져진다
오늘도 나는 당신에게
뽑히고 밟히며 또 베던져졌다
그런 당신에게
나를 빼내치다 혹여 바람구멍이라도 뚫리고
헛헛한 갈증에 길이라도 잘못 디딜까
당신 가슴에 심어줄
푸른 안식을 꿈꾸고 있다
나도 당신을 애(愛)바라는
잡초가 되고 싶다
당신에게 뽑히고 밟히며 또 베던져져도
당신을 애(愛)바라며 질긴 순(筍)을 내미는
잡초처럼 살고 싶다
(후기)
- 애(愛)바라기
′해′를 사모하며 항상 ′해′의 얼굴만 쳐다보고 사는
해바라기를 빗대 내가 만든 말(造語)이다
′당신′을 사모하며 항상 ′당신′을 기다리는 나는 ′애(愛)바라기′다
- 낯을 가리다
친하고 친하지 않음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다
- 성그러운
천연스러운 태도로 부드러운 태도로 눈웃음 짓는
고결하고 성스러우며 쳔연스럽게 눈웃음을 짓는 듯한
흰 옷 매무시
흰 수건이
물살마냥 성그럽고
촛불 밝혀 모여든 얼굴들
환히 불빛보다 더 밝아
복되도다 (김남조, ′성모의 밤′)
당신의 눈웃음에 딱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 앙가풀이
앙갚음
- 주질러 앉다
주저앉다
저승이라도 함께 가겠다고/
어린 송장하고 땅바닥 주질러 앉아/
넋놓고 울다가/ (고은, ′중뜸 재수네 아기′)
- 모지라진
물건의 끝이 닳아 없어진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毒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김영랑, ′毒을 차고′)
- 헛헛하다
속이 빈 것처럼 무엇이 먹고 싶다
몹시 출출해서 자꾸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