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8일 일요일
이성선의 ´구름´ 외
<구름에 관한 시 모음> 이성선의 ´구름´ 외
+ 구름
구름은 허공이 집이지만 허공엔 그의 집이 없고
나무는 구름이 밟아도 아파하지 않는다
바람에 쓸리지만 구름은 바람을 사랑하고
하늘에 살면서도 마을 샛강에 얼굴 묻고 웃는다
구름은 그의 말을 종이 위에 쓰지 않는다
꺾어 흔들리는 갈대 잎새에 볼 대어 눈물짓고
낙엽 진 가지 뒤에 기도하듯 산책하지만
그의 유일한 말은 침묵
몸짓은 비어 있음
비어서 그는 그리운 사람에게 간다
신성한 강에 쓰고 나비 등에 쓰고
아침 들꽃의 이마에 말을 새긴다
구름이 밟을수록 땅은 깨끗하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구름
자취 없이
일정한 얼굴도 없이
어느 곳에서도
결코
머물지 않는
하늘로
집을 한
구름은 기찬 놈이다
(김원식·시인, 1934-)
+ 구름이 전하는 말
가슴이 벅찰 땐 한껏 피워 올라 보십시오
사는 게 힘들 땐 잠시 동안 쉬어보십시오
마음이 많이 아플 땐 실컷 울어보십시오
떠나고 싶을 땐 유유자적 흘러보십시오
숨고 싶을 땐 자취를 아예 감춰보십시오
나처럼 말입니다
그럼 이만,
(작자 미상)
+ 구름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구름은
지상을 살피러 온 천사님들의
휴식처가 아닐까.
하느님을 도우시는 천사님들이여
즐겁게 쉬어 가시고
잘되어 가더라고 말씀하소서.
눈에 안 보이기에
우리가 함부로 할지 모르니
널리 용서하소서.
(천상병·시인, 1930-1993)
+ 구름 나이
푸른 하늘에 피어난 저 흰 구름
몇 살이나 되었을까?
깊은 산 샘골에서
아기 샘물로 태어나
산도랑 지나고
봇도랑 지나고
개울, 강 지나서
바다에 머물다가
할아버지 되시어 하얗게 피어 오른
저 흰 구름 몇 살이나 되었을까
(황베드로·수녀)
+ 흰 구름의 마음
사람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땅에서 살다
땅에서 가고
구름은
아무리 낮은 구름이라도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간다
그래서 내가
구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구름은 작은 몸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갈 때에도
큰 몸이 되어
산을 덮었을 때에도
산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간다
(이생진·시인, 1929-)
+ 뜬구름
구름처럼 심심하게 하루가
또
간다
아득하다
이따금 바람이 풀잎들을 건들고 지나가지만
그냥 바람이다
유리창에 턱을 괴고 앉아
밖을 본다. 산, 구름, 하늘, 호수, 나무
운동장 끝에서 창우와 다희가 이마를 마주대고 흙장난을 하고 있다
호수에 물이 저렇게 가득한데
세상에, 세상이
이렇게 무의미하다니.
(김용택·시인, 1948-)
+ 뭉게구름
나는 구름 숭배자는 아니다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구름 아래 방황하다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구름들의 변화 속에 뭉개졌으며 어머니는
먹구름들을 이고 힘들게 걷는 동안 늙으셨다
흰 머리칼과 들국화 위에 내리던 서리
지난해보다 더 이마를 찌는 여름이 오고
뭉쳐졌다 흩어지는 업의 덩치와 무게를 알지 못한 채
나는 뭉게구름을 보며 걸어간다
보석으로 결정되지 않는 고통의 어느 변두리에서
올해도 이슬 머금은 꽃들이 피었다 진다
매미 울음이 뚝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이 오리라
(최승호·시인, 1954-)
+ 구름이 전하는 말
웃으면서 살라하네
나누면서 살라하네
바람처럼 살라하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라하네
지난 세월 한탄 말고
앞을 보며 살라 하며
이왕이면
나의 육신 보석처럼 아끼면서
향기 물씬 피우라 하네
(작자 미상)
+ 구름
내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한 조각 구름이나 되어
어느 황량한 산 위에
호젓이 떠 있으리라
설령 내 생명이
바람에 정처 없이 떠돌지라도
한 오리 애착도 남기지 않고
산산이 부서져 비 되어 떨어져도
애처로울 것 하나 없는
가벼운 영혼이고저
밤이면 별들의 속삭임도 들어보고
떨고 있는 초생달도 품어 보리라
(최종진·시인)
+ 구름에 깃들어
누가 내 발에 구름을 달아 놓았다
그 위를 두 발이 떠다닌다
발 어딘가, 구름에 걸려 넘어진다
生이 뜬구름같이 피어오른다 붕붕거린다
이건 터무니없는 낭설이다
나는 놀라서 머뭇거린다
하늘에서 하는 일을 나는 많이 놓쳤다
놓치다니! 이젠 구름 잡는 일이 시들해졌다
이 구름,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구름기둥에 기대 다짐하는 나여
이게 오늘 나의 맹세이니
구름은 얼마나 많은 비를
버려서 가벼운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어서 무거운가
구름에 깃들어
허공 한 채 업고 다닌 것이
한 세기가 되었다
(천양희·시인, 1942-)
+ 구름의 노래
한 생애의 욕망과 좌절은 결국
여기에 와서야 조용히 만나 갈등을 풀었다
덜컥 관이 멈추고 따라 들어갔던
시선들이 하릴없이 다시 이승으로 되돌아와서
비로소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풀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산이 몇 번 꿈틀꿈틀 잠자리를 흔들다가
편안한 자세로 돌아누워 큰 숨을 토한다.
서둘러 흙을 덮어 주고
우리는 돌아섰다. 세상은 이제 모를 것이다.
그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다시 깨우지도 못할 것이다.
울먹울먹하던 구름도 산너머로 사라지고
난데없이 산제비 한 마리
앞을 가로세로 가르며 날다가
아주 가볍게 사라졌다.
이 길을 빠져나가면 작은 신작로가 있고
작은 신작로를 지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눈감고도 훤하다.
수없이 긴장하고 놀라 깨어야 할 그 곳이.
(유장균·시인, 1942-1998)
+ 흰 구름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하얀 염소들이
둘씩 셋씩 떼를 지어
하늘을 가요
소나기 쏟아진 뒤
파아랗게 개인 하늘
풀밭을 가듯이
앞다투어 하늘을 가요
하얀 수염
바람에 날리며
매애애 매애애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 흰 구름
대청소날,
교실 창문을 떼어내고
유리를 닦는다
후우
입김을 쏘여 주고
마른 헝겊으로 닦아 내면
먼지투성이 뽀얗던 유리가
금세 새것처럼 깨끗해진다
가만히 있어도
먼지가 와 앉는다
버려둘수록 먼지 두께는 더해 가고
더러운 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언짢아진다
정성으로 닦을 때, 공들여 닦을수록
다시 깨끗해지는 것은 유리뿐이 아니다
책상도, 칠판도
교실 바닥도
그리고 우리들 마음도 그렇다
깨끗한 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언젠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스피노자는 렌즈 닦는 일을 하면서
생각했다. 생각 속에 묻혔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깊이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유리를 닦는다
마알간 유리에 푸른 하늘이 비치고
흰 구름이 눈부시다
(정원석·아동문학가이며 의사, 1932-)
+ 흰 구름
잊어버린 아름다운 노래
고요한 가락처럼
다시금 푸른 하늘 떠도는
저 흰 구름 보아라!
기나긴 방랑의 길 위
온갖 슬픔과 기쁨
맛본 나그네 아니고서야
저 구름의 마음 알 수 없으리.
태양과 바다와 바람 더불어
나 떠도는 저 구름 사랑하노니
그것은 고향 잃은
누나이고 천사이기 때문...
(헤르만 헤세·독일 시인이며 소설가, 1877-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상윤의 ´아이에게´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