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일 토요일

벙어리장갑 / 서동균

벙어리장갑 / 서동균

길바닥에 떨어진 벙어리장갑은 저체온증이다
행려병자의 시체처럼 이미 싸늘하다
쓱싹쓱싹
실밥에 매달린 톱니 같은 고드름이
긴 밤을 잘게 썰고 있다
배곯은 도둑고양이가 묶어 놓은 분리수거봉투를
발톱으로 할퀴고 지나갈 때
바람이 머물다 간 장갑 끝에 손가락이 돋아난다
툭툭 고요함을 터뜨리는 실밥을 꿰어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새벽서리
고양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장갑을 낀 발자국이 답삭답삭 걸어간다
허공을 통과하는 파란 태양에
움켜쥔 햇살을 조심스레 펴 보인다
2011년 계간 <시안> 가을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