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저녁 길을 걸으며[이정하]
저/녁/
길/을/걸/으/며/
해질 무렵,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그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니, 또 어찌보면 아무것도 없기도 합니다.
아픈 우리 사랑도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한 송이의 꽃을 피워 올릴 수만 있다면
내 온 힘을 다 바쳐 곱게 가꿔 나가겠지만
그것이 또 내 가장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듯 무작정 거리에 나서
그대에게 이르는 수천 수만 갈래의 길을
더듬어 보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여름, 무던히 내리쬐던 햇볕도 마다 않고
온 몸으로 받아 내던 잎새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 꽃잎들도 언젠가 떨어지겠지만, 언젠가
떨어지고 말리라는 것을 제 자신이 먼저 알고 있겠지만,
그때까지 아낌없이 제 한 몸을
불태우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떨어진 꽃잎 거름이 되어 내년에 더더욱 활짝
필 것까지 생각하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