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정연복 시인의 ´아내에게´ 외
<중년의 사랑노래 모음> 정연복 시인의 ´아내에게´ 외
+ 아내에게
이 세상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 우리 둘
당신과 내가 사랑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도 오래
처음에는 우리의 만남
아름다운 우연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의 만남
하늘이 맺어 준 필연이라고 느낍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
구름처럼 덧없이 사라진다고 해도
오직 당신의 존재 하나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당신을 사랑하는 이 마음
영원히 변함없기를!
+ 팔베개
우리가 만난 지
꿈결처럼 세월은 흘러
까맣던 우리 머리에
흰 서리 눈꽃으로 내리는데
이제 나는 네 영혼의
팔베개가 되고 싶다
너의 영혼이 고단할 때면
언제든 편안하게 다가와
베고 누워도 좋은
팔베개
네가 슬프거나
네가 외로울 때에도
말없이 찾아와
폭 안겨도 마냥 좋은
팔베개
+ 안개꽃 당신
햇살 밝은 베란다 창가에 앉아
당신을 생각합니다
한겨울 추위에 얼어붙은
온 누리의 구석구석
은은한 생명의 빛을 선사하는
저 눈부신 불덩이
언제였던가
가끔은 외로움으로 그늘졌던
나의 고독한 청춘에
당신의 존재가 햇살처럼 와 닿은 그때
안개꽃 같이 말없이 화사한
당신의 모습을 살며시 훔치며
나의 심장은 한순간 멎는 듯했지
그렇게 우리는 만나
마음과 마음을 잇대어
행복한 사랑의 불꽃을 피웠네
장밋빛 불타는 사랑의 계절은 지나
어느새 우리의 사랑살이에도
세월의 그림자가 꽤 길게 드리웠지만
오!
첫사랑 그 시절의
우리의 티없이 순수했던 사랑만은
영원히 변함없으리
+ 손깍지
세상 살아가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
이따금 근심을 품고
잠 못 이루는 날에도
슬그머니 당신의 손을
내 가슴으로 끌어당겨
당신의 손가락 마디 사이로
나의 손가락 마디를 끼어
동그랗게
손깍지 하나 만들어지면
참 신기하기도 하지!
내 맘속 세상 근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늑한 평화
+ 참 고마운 당신
당신과 함께 살아온
스물 몇 해
세월의 그림자
길게 드리운
우리의 지난 결혼생활
가만히 뒤돌아보니
당신은 말없이
늘 나의 잔잔한 배경이었네
인생의 중천(中天)을 훌쩍 넘고서도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는
나와 함께 살아오느라
어쩌면 남몰래 눈물지었을 당신
그런 당신이 곁에 있어
지금까지 나는
밤하늘의 총총 별들처럼
수많은 행복을 누렸지
그 행복으로 이제는
내가 당신의 배경이 되어 주리
참 고마운 당신!
+ 사랑의 꿈
죽음 너머까지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지는 않으리
우리 둘의 심장이
뛰는 그 날까지만
너는 내 가슴속 한 묶음
소박한 들꽃이면 좋으리
나는 네 가슴속 한줄기
밝은 햇살이면 좋으리
서로의 마음이
가끔은 모나고 어긋나서
짜증을 부리고 한바탕
사랑싸움을 해도 좋으리
그저 햇살 그리운 들꽃
들꽃 그리운 햇살이면 좋으리
+ 소중한 당신
짧은 목숨살이의
어느 모퉁이에서
어쩌면 우리 둘은 만나
이렇게 하나가 되었을까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의 파도 속에
너와 나의 영영
이별의 시각도 다가오고 있겠지
언젠가는 나의 곁에서
아스라이 멀어질
파르르 한 장 꽃잎 같은
여린 목숨
그래서 더없이
소중한 당신이여
+ 꽃잎
문득 아내가
참 예뻐 보일 때가 있다
친구랑 술잔을 기울이다
늦은 귀가의 밤
남편이 돌아온 줄도 모르고
이불도 내동댕이치고
이따금 코도 골며
세상 모르고 자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가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사는 것은
나 때문인 것을
한때는 꽃잎처럼 곱던
얼굴에 잔주름이 피었어도
예나 지금이나
내 눈에 아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다
+ 반달
내 생이
그믐달인 듯 야위어
쓸쓸함이 여울지는 날에도
나의 반쪽,
나의 영원한 사랑
반달 같은 당신 있어
허투루 눈물짓지 않으리
+ 파랑새
행복의 파랑새는
저 멀리 살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나의 곁을 빙빙 맴돌고 있음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 사람
이 세상에서 나에게
밥상을 가장 많이 차려준 사람
이 세상에서 나의 안팎을
누구보다 세밀히 알고 있는 사람
내 삶의 환한 기쁨과 보람
몰래 감추고픈 슬픔과 고독의
모양과 숨결까지도 감지하는 사람
그리고 나 때문에
종종 가슴 멍드는 사람
하루의 고단한 날개를 접고
지금 내 품안에 단잠 둥지를 틀었네
작은 파랑새여
아내여
+ 아내의 발
어젯밤 과음으로
목이 말라
새벽녘 잠 깨어 불을 켜니
연분홍 형광 불빛 아래
홑이불 사이로
삐죽 나온 아내의 발
내 큼지막한 손으로
한 뺨 조금 더 될까
상현달 같은
새끼발가락 발톱
반달 모습의
엄지발가락 발톱
앙증맞은 그 발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아내는 얼마나 고단했을까
군데군데 제법 굳은살이 박힌
235밀리 작은 발
그 총총 걸음마다
행운과 복이 깃들이기를....
+ 영원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우리의 사랑
영원히 변치 말자
약속했을 때
그것은 그저
아득한 맹세라고 생각했는데
당신과 스물 몇 해
살과 살 맞대고 살면서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
고독한 섬이라서
나는 아무래도 너일 수 없고
너는 나일 수 없어도
고단한 인생살이에
서로에게로 비스듬히 기울어
섬과 섬 사이의 틈이
차츰차츰 좁아지다 보면
그 아득한 사랑의 맹세는
지금 이 순간의 일이라는 것
+ 사랑의 추억
목련꽃 그늘 아래
당신의 순한 눈빛은
참으로 고왔어라
장미꽃 덤불 속
당신의 해맑은 미소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어라
호젓한 가을의 벤치
살포시 당신과의 포옹은
몹시도 행복했어라
추운 겨울 밤
당신의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내 마음은 따스했어라
이제 당신의 눈가에
세월의 이랑처럼
잔주름이 피어났어도
나 그런 당신의 모습이
더욱 예쁘게만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 정연복(鄭然福) : 1957년 서울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