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던 쓸쓸한 그리움 대신
시커먼 흙 옷을 입은 감자를 손에 쥐고
하얀 속살이 보이도록 껍질을 벗긴다.
저무는 오월 맑은 햇살 아래
20년 세월 속에 나만의 기다림도
외로움에 잠 못 들어 뒤척이며 보낸 시각도
감자 껍질 벗기는 이 시각과 함께 모두 떨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여 자유로운 삶을 찾아서
하얗게 벗긴 감자를 도마 위에 올려
채를 썰며 가슴에 머무는 그리움도
쓸쓸했던 외로움도
흙 옷 대신 하얀 가루 옷을 입히고
뜨거운 기름 솥에 넣고 전을 지져낸다
그리움도 외로움도 기다림도
이젠 뜨거운 불 위에 얹어서
색다른 요리로 튀겨내고 삶아내고
볶아내고 걸려낸 찌꺼기는
흙 묻은 감자 껍질 함께 쓰레기 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