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7일 화요일

늙은 아비에게

손 뻗으면 닿을
늙은 아비의 무덤 길을
서두르라고 누가 재촉하나보다
안개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지척의 아비가
바다 건너 섬보다 더 멀다
오늘은 허공의 어느 길로
산보를 다녀오셨는지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異國처럼 낯설다
누구요?, 저에요!, 누구라고?,
나는 집을 향해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비는 담장밖으로 뛰쳐나온
꽃처럼 벌써 지고 있었다
카랑카랑하게 生을 호령하던
그 목소리는 언제 달아났는지
불현듯 잘라버린 귀를 들고
마음 건네준 사람에게 찾아가
열어주지 않는 대문을
한참 동안 두드리고 돌아왔을
어느 화가의 자화상을
아비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졌다
넋 놓고 숨 놓고 있는 아비에게
진흙으로 나른한
청춘의 봄 햇살이 들이닥친다
뼈만 남은 늙은 아비의 팔에서
언젠가 사과가 배가 주렁주렁 열렸고
핏기 마른 늙은 아비의 가슴
어느 곳에선가 배추와 무가 굵었다
저 늙은 아비에게
오는 봄이 이제 너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