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5일 수요일
이광웅의 ´목숨을 걸고´ 외
<스승의 날 특집 시 모음> 이광웅의 ´목숨을 걸고´ 외
+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이광웅·교사 시인, 1940-1992)
+ 스승
깊은 강 앞서 건너가
뒤따라올 지친 몸 기다리는 이
높은 산 먼저 올라서서
어진 손 내밀며 웃고 있는 이
그가 있어 가쁜 숨 돌리고
그가 있어 저린 몸 쉴 수 있으니
바다에 닿으면 벗이 되고
하늘에 닿으면 한 이름이 되는
스승,
배고프고
가슴 아픈 그 이름
(유용선·시인, 1967-)
+ 참스승
꽃 이름만
배우지 마라
꽃 그림자만
뒤쫓지 마라
꽃이 부르는
나비의 긴 입술
꽃의 갈래를 열어
천지(天地)를 분별하라
몸으로
보여주는 이
(목필균·시인)
+ 스승의 시
선생님은
학생들 마음에 색깔을 칠하고 생각의 길잡이가 되고
학생들과 함께 성취하고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길을 밝혀 젊은이들을 인도하며
지식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일깨웁니다.
당신이 가르치고 미소 지을 때마다
우리의 미래는 밝아집니다.
시인, 철학자, 왕의 탄생은 선생님과
그가 가르치는 지혜로부터 시작하니까요.
(케빈 윌리엄 허프·미국의 웹디자이너)
+ 나무도장
蘭丁 魚孝善 선생님은
초등학교 은사
손수 새겨주신 나무도장을
인주 묻혀 찍을 때마다
절하고 싶다
세월의 땟국물을
마시며 살았어요
절 받으셔야 할 참스승도
이제 몇 분 안 남으셨으니
(김영태·시인, 1936-2007)
+ 스승의 마음
제자 꾸지람한 오늘
많이 야단친 오늘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이 언짢습니다
올바른 길 가라고
생각하며 살라고
바로 서길 바라며 나무랐지만
행여 상함 입었을까
맘 쓰입니다
깨달음 가졌을까
염려됩니다
그래도 마음은 가볍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꾸짖어 주고
사랑하는 맘으로 일러줬기에
할 일 한 것 같아 흐뭇합니다
할 도리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오보영·시인, 충북 옥천 출생)
+ 스승 존경
성철 스님이 어느 날
이 나라 근대불교의 거목인,
그때 수덕사 정혜사에 주석하고 계셨던
만공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스님께선 스승이신 경허 스님을 존경하십니까?˝
만공 스님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답하신다
˝이 사람아
내가 옆에 있어야
양식이 떨어질 때
스승께서 나를 잡아먹을 수 있지 않을까˝
말씀하셨다.
요즈음 세상은
스승을 등지는 것은 다반사요
스승을 등쳐먹고
숫제 스승에게 칼부림까지 하는 세상이니
나를 잡아 양식으로 먹으라고 내놓을 제자들은
모두 어딜 갔는가
모두 스승에게 잡혀먹히지는 않았을 텐데
스승의 고통을 스승의 고독을 외면하고는
내가 찾아가지 않으니 쓸쓸하고 허전하지요
하는,
오만불손한 그 얄팍한 無明의 중생심들 따위 외면하고
네 이놈들 다시는 따라오지 말거라
표연히 맑은 숲길로 발걸음을 옮기는
만공 선사 같은 맑은 마음일레.
제가 그 스승 앞에서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 스승 앞에서 자기가 죽어짐으로써이다.
스승을 죽이고도 자신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면
그는 이미 썩은 송장 아닐까보냐.
(랑승만·시인, 1934-)
+ 스승과 제자
또 한 고개 높은 재 넘어
낭떠러지 길가에 앉아
고달픈 다리를 쉬노랄 제
뒤에서 돌격대처럼 달려와
´선생님´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껴안는 병정 한 사람
반가와라 이게 누군고
군인이 된 나의 제자
길목 지키는 파수병으로
이 깊은 산협에서 만나보다니
두 손목
서로 붙들고
어루만지다 이야기하다
산협길 멀고 험하고
해조차 뉘엿이 기울건마는
차마 서로 못 나뉘어
손목을 놓았다 잡았다
헤어져
산모퉁이 돌 때까지
몇 번이나 되돌아보고
(이은상·시인, 1903-1982)
+ 나의 스승, 똥장군
초등학교 5학년
늦가을 무렵
툇마루의 아버지께선
그지없는 눈빛으로
처연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집 형편
잘 알지?
중학교 시험에 떨어지면
그날부터
똥장군을 져야 해
알겠지?
그날 이후로
대문 옆의 똥장군
내 가슴에 눌러앉아
나를 이끄는
스승이 되었네.
세월 흘러 아버지
푸른 하늘로 스러졌지만
나의 스승인 똥장군은
여전히
내 마음을 다스린다.
(손정모·시인, 1955-)
* 똥장군: 나무로 만들어진, 단면적이 둥글고 모양이 길쭉하며 가운데 부분이 불룩한 농업용 용기로서, 주로 똥과 오줌을 실어 나르는 도구였음.
+ 스승
캄캄한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어
꽃도 나무도 눈을 번쩍 떴으니
새벽, 당신이 스승이다
얼어붙은 땅속에
숨쉬고 맥박 뛰는 소리를 던져주어
온갖 무덤의 귀가 활짝 열렸으니
봄, 당신이 스승이다
정수리를 죽비로 내려치며
한순간 깨달음을 주는 것은
말없이 다가오므로
스쳐가는 바람처럼 놓치지 않으려면
온몸으로 부딪혀 배워야 하는 법
흘러가는 강물과
타오르는 횃불과
허공에 떠 움직이지 않고
바닥을 응시하는 새와
제 태어난 곳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어가는 물고기도
감사하고 고마운 스승이다
죄 많은 우리들 대신에
십자가에 사지를 못박히는 일과
생을 가엾게 여기고
보리수나무 아래 가부좌하는 일이란
세상 똑바로 쳐다보라고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어릴 때 내 꿈은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시인, 1954-)
+ 무명교사 예찬사
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위대한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무명의 병사이다.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로다.
그는 청빈 속에 살고 고난 속에 안주하도다.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마차는 없으며,
금빛 찬란한 훈장이 그 가슴을 장식하지 않는도다.
묵묵히 어둠의 전선을 지키는
그 무지와 우매의 참호를 향하여 돌진하는 그이어니
날마다 날마다 쉴 줄도 모르고
천년의 적이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자 싸우며,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워 일으키도다.
게으른 자에게 생기를 불어주고
하고자 하는 자에게 고무하며
방황하는 자를 확고하게 하여 주도다.
그는 스스로의 학문하는 즐거움을
젊은이에게 전해 주며
최고의 정신적 보물을 젊은이들과 더불어 나누도다.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은 보상이다.
지식은 새 책에서 배울 수 있으되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오직 따뜻한
인간적 접촉으로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로다.
공화국을 두루 살피되 무명의 교사보다
예찬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민주사회의 귀족적 반열에 오를 자
그밖에 누구일 것인고
자신의 임금이요, 인류의 머슴인저!
(헨리 반 다이크·미국 시인, 1852-1933)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어느 무명 교사의 ´교사의 기도´ 외 "> 이생진의 ´설교하는 바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