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9일 토요일

봄은 어떻게 왔는가

봄은 왔는가
겨울은 그렇게 길었었는데
따스한 햇살 거느리고
부드러운 바람으로 비단 옷 지어 입고
나의 창 너머로
만발한 개나리처럼
노오란 그리움으로 다가왔는가

옷장 속에는
아직도 세탁하지 못한 겨울옷들이
형벌처럼 무겁게 걸려 있는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발 제발 나를 버리지 말라고
간절히 애원하고 있는데

꽃가게에서 사온 조그만 꽃 화분 하나
빨갛게 피어 있는 예쁜 꽃잎에
살며시 입맞춤하며 봄은 왔는가

옷장속의 겨울옷처럼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이
비듬처럼 우수수 떨어지는데
아직 누군가를 용서하지도 못했는데

어두운 기억의 터널을 지나
문갑위에 놓여진 14인치 텔레비전
그 작은 화면 속에도 봄은 왔다
밤 9시 뉴스 말미에
‘봄을 팝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화면 가득히 피어나 있던
이름모를 꽃들의 짧은 미소

내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스치듯이 지나가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