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다
생(生)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 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쌍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 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 주면서
먼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