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오보영의 시 ´탄생´ 외


<출산과 탄생 시 모음> 오보영의 시 ´탄생´ 외

+ 탄생

아내여 수고 많았소
참 장하외다

훌륭한 인내로 당신 오늘
생명의 신비를 베끼시었소
열 달 전 찾아든 많은 고통들
당신은 잘도 참아내었소

일어서면 생겨나던 어지러움도
고개 돌려 피해내던 비린 내음도
움직일 때 몰려오던 큰 숨가쁨도
열 달 긴 시간 당신 잘 견디었소

온몸 부서지는 아픔
하늘 땅 갈라지는
태초
생명 터지는 큰 고통까지도
귀한 생명 위해 잘 참아내었소
우리 둘 소산 위해 잘 견뎌내었소

사랑하는 아내여
당신 참 장한 일 했소
(오보영·시인, 충북 옥천 출생)
+ 몽고반점

어머니 뱃속에서
무슨 잘못을 하였기로
저토록 멍이 들도록 모진 매를 맞았을까

한 세상 살아가는 일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삼신할멈은 미리 매를 들었을까

열 달 불효를 용서 빌며
스스로 매질을 하였을까

어머니 배앓이 하는 까닭은
그런 태아가 안쓰러워
함께 아픔을 나누는 것이겠지.
(김상현·시인, 1947-)
+ 탄생

흰 눈의 원무를 거느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올 때
지상엔 기쁨으로 충만케 하소서.

어느 응달, 어느 그늘에도
간직하여 받들고 온
풍요한 생명의 빛이 스미게.
한 아비의, 한 어미의
아들이면서
우리를 지탱하여 키워 온
山, 흙덩이마다의
바다, 물방울마다의
또한 아들이게.

탄생의 기쁨은
그 할머니, 그 어미에게만이 아니라
이렇게 눈을 맞고 있는
모든 사람의 머리에까지
와서 닿게 하소서.
(문효치·시인, 1943-)
+ 탄생의 신비

생명을 나누어 나온
또 하나의 생명이
잉태를 아파하며
연(緣)을
탄생시키고 있다.

심연의 눈동자 속에
잴 수 없는 신비를 담고
눈맞춤이 길어질 때
정(情)이
전율처럼 타고 오는
긴 순간들

흐뭇한 미소가
얼굴 가득히 흘러내리고
한 시대를 여는
기원의
탄생을 지켜보며
손잡아 매이는 체온이
피를 잇게 한다.
(최풍성·시인, 전북 임실 출생)
+ 탄생

꿈틀대고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무서움도 몰랐다.
외로움도 몰랐다.
아픔도 몰랐다.

어느 날
장막은 걷히고
하늘이 보였다.

이제 날자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펴고
꿈을 키우자

그러나 무섭다
그러나 외롭다

그리고 아프다
(신혜림·시인, 서울 출생)
+ 탄생

태어나는 일은
못내 서러운 것이라고
너는 이 저녁
산부인과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이토록 우는 것이냐

아직 열리지도 않은
네 속눈썹 속에
차가운 시신이 보여
슬프디 슬픈 비명을 울리는 것이냐

울음소리 엿듣는 하늘은 알리라

풀어헤친 네 울음자락이
어디로 펄럭이며 가는 것인가를

누가 너를 나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보내 주었는가를

왜 너는 이 땅의 아이로
내려섰는가를

울려라, 아가야
네 못 다한 울음의 줄을 퉁겨

숨어있는 비밀이 다하여
네 번쩍이는 울음이 그칠 때
세상은 다시 태어나
너의 무릎 앞에서 옷을 벗고

그러면 너는 알리라
우리에게도 이 바람 부는 땅
울지 않는 순간이 있음을

우리도 언 뺨을 비비고
끝내 사랑할 수 있음을

죽음도 우리는
미워하지 않음을.
(정성수·시인, 1945-)
+ 출산

아들 둘을 낳고
세 번째 딸을 낳았다
출산의 고통도 컸지만
그것은 잠시 지나쳐 사라져 가는데
그 아이 젖 달라
응애응애 우는 모습 보면서
손으론 옷깃을 풀어 젖을 꺼내지만
나의 눈은 그 아이의 얼굴에 멈추어
함께 울었다.

젖을 먹이며 찌르르 도는 순간은
가슴이 메어 질듯 마음이 아파 온다
˝아가야
너는 어쩌다 나와 같은 여자로 태어나
지금부터 이렇게 울어야 하니......˝

나는 너무도 불쌍해서
그 아이 젖 달라고 울 때마다
측은한 마음 솟구쳐 올라 함께 울었다.
내가 울면서 젖 주면
행여 그 아이 불행해질까 봐
참아 보려 애쓰면서 젖을 먹였다.
(이월순·시인, 1937-)
+ 출산

당신을 차마 두고
나는 돌아서야 합니다
이 길로 영영 끝일지도 모르는데
눈만 껌뻑이며 소처럼 끌려갑니다
여보!
나 홀로 수술실 천장만 올려다보며
당신의 핏줄을 받아내는 이 마음
아시는지요

전능하신 하느님
우리 지환이
내 손으로 안고 걸어나갈 때까지
그때까지만
그이를 지켜 주세요
하느님!
(강민숙·시인, 1962-)
* 한날한시에 남편의 사망신고와 아들의 출생신고를 한 시인의 슬픈 사연이 담긴 시.
+ 작은 기도 - 산모의 기도

언젠가 무심결에 땄던
꽃잎 하나에게도 미안해하며

온 생명의 소중함에
새롭게 눈뜨기 원하오니

당신이 지으시고 돌보시는
나의 작은 몸

그 안에서 꿈틀대는
더욱 작은 생명과 더불어

나의 생명도
태초의 순수로 거듭나게 하소서

생명의 참 주인이신
당신의 따습고 다정한 손길로

나를 어루만지소서
고운 아가 하나 빚으소서
(정연복·시인, 1957-)
+ 시끄러운 출산

산수유 꽃눈을 뜨고 부터
시끄러운 봄

성급한 목련, 개나리
새순을 제치고 꽃잎을 미리 내밀다
터진 싸움
살바람이 인다

흐드러진 벚꽃
고운 살결도, 눈부신 다툼에
한갓 눈발로 날고
연산홍, 진달래 같이 누워
사랑을 나누지만

저 아우성, 나는 안다
열흘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본능
(김승동·시인, 1957-)
+ 탄생

내가 *연지문(蓮池門)을 들어설 때
연꽃은 물 위로 작은 봉오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엄마의 그곳에서
양수를 머금은 아기의 머리가
세상으로 빛을 밀어내듯이

내가 연못을 한바퀴 돌고 나자
아기 손만한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또 한 바퀴를 더 돌자
합장한 동자스님의 손만큼

또 한 바퀴를 더 돌자
아기를 보듬은 엄마의 환한 얼굴만큼
연꽃은 벙글었습니다

금술 빛나는 아침해가
연지(蓮池)의 품에서 뜨고 있었습니다
(정군수·시인)
* 蓮池門 : 전주시 덕진동에 있는 연못으로 들어가는 문
+ 탄생

알집을 열고 나오자마자 가시고기는 제 애비의 시신을 파먹고 바다로 나아간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저 가시고기떼의 늠름한 입이여!
(이시영·시인, 194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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