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당신은 하늘

당신은 하늘


사랑하는 보희!
다가가도 다가가도

한 걸음도 다가설 수 없는

뻗어도 뻗어도

한 뼘도 좁히지 못하는
당신은 하늘

언제나 그저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도

행여 내 마음이 당신에게 향하기라도 하면

금새 알아차린 당신은

구름처럼 물처럼 한사코 한사코 흘러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항상 허기진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부러 가슴을 텅 비워두고 사랑으로 배를 채우며

허무는 무엇으로든 메우려드는 자연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채우고 채우다 지친 내 사랑은 이제 바닥을 드러내는데도

밑 빠진 독처럼 아직 허허한 빈속에 쓰려하는 당신은

말라가는 목이라 추길 사랑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애초 사랑을 구하면서

당신 가슴을 채우기에는 내 사랑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 모르진 않았습니다
나 아닌 내가 사랑되어 당신 이곳저곳에

사랑씨를 뿌리리라는 사정을

짐작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채워줄 사랑이 바닥나고

붉은 마음(丹心)까지 들어내 버린 오늘

나 아닌 나에게 기웃거리는 당신을 붙잡기 위해 바칠 것이라고는

입에 바른 거짓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많은 사랑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나이기에

당신을 위해 모든 일을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나 아닌 나보다 더 알뜰히 해드릴 한 가지가 있다면

곁가지 없이 바칠 수 있는 순백한 사랑뿐입니다
바칠 것이 이런 거짓밖에 남아 있지 아니하고

또다른 거짓도 생각해낼 수 없는 내 자신을 서뤄합니다

그리고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에는 애당초부터 정해진 사랑이란 없습니다

사랑을 꿈꾸며 흔들릴 때

무심코 눈높이에 와 닿는 사랑은 누구든

사랑의 부름이 되고 사랑이 됩니다

찾아 헤매는 사랑도 이렇게 흔들리는 당신과

우연히 눈을 맞춘 사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멈춰설 때가 되었습니다

구름처럼 노을처럼 언제까지 흘러만 가려합니까

부평초(浮萍草)처럼 떠도는 영혼을 언제 붙잡으렵니까
이왕 흔들리려면

처음부터 다시 흔들려주세요
흔들리는 당신 모습을 지켜보다

무심히 흐르는 당신 눈에 내 눈높이를 맞추고

사랑의 부름을 좇아 벌떡 일어서겠습니다

다시는 흔들리지 아니하는 사랑을 이뤄드리겠습니다

- 당신의 오성


(후기)

『자연은 진공(眞空)을 싫어한다』(Nature abhors a vaccum.)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 특히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진공』 상태에 빠져버리는 것은
체험해본 사람은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한 진공 상태에서는
사랑을 잃은 사람은 잃어버린 사랑이 어떤 사랑이 되었든
다른 사랑으로라도 보충하려는 갈증을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갈증을 느끼는 지금의 상태는
이런 진공상태가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