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가을 숲에 안겨서

가을숲에
종일토록 가만히 안겨서 있다
가없는 영혼 하나,
갈망의 불은 끈 채
말없이 흐르는 오후의 강물처럼
숨가쁜 시간을 잠재운 거울,
끝없이 되쏘는 산정의 빛,
강줄기 따라 걷고 있는 길 위에서
옛 사랑을 읊어대는 방랑시인처럼
신의 용서를 구하는 순례자처럼
그러나 지금은 자연의 힘 앞에
다소곳이 엎드린 힘없는 짐승,
꿈틀거리는 긴 몸뚱이를 들어
언제 다시 흐를 지 모른다

가을산
팔은 어디까지 뻗어있는 것일까
가엾은 영혼 하나
체념한 듯이 저를 맡기며
저를 달래는 저녁강물 처럼
적막의 끝에서 찾아낸 보이지않는 끈 하나
질기게 물고 흘러간다
전설의 서사시였을까
완전한 사랑을 꿈꾸던 어리석은 시인처럼
그렇게 계절을 몰고나가는 힘 앞에
순종하는 눈빛
보이지않는 운명에 이끌리는 동안
마치 죽음을 잊는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