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6일 토요일

제해만의 ´고 작은 것´ 외

<작은 것을 노래하는 동시 모음> 제해만의 ´고 작은 것´ 외

+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
제비꽃이 피지 않으면
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매미가 울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추잠자리가 날지 않으면
가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눈가루가 내리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고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만든다.
(제해만·아동문학가, 1944-1997)
+ 고 조그만 것이

고 조그만 산새 알에서
하늘을 주름잡는 날개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꽃씨 속에서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새싹이 자라
밀림을 만드는 아름드리 나무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아기가 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나올까?
(전영관·아동문학가)
+ 고 작은 것이

개미 한 마리가
고 작은 것이
나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다

평지를 걸어와도 힘들 텐데
헉헉거리지도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늠름하기까지 한 개미

내가 나를 본다
그리고 개미를 본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기진맥진하여 늘어진 나와
한마디 불평 없이
큰일을 해내는 개미 한 마리

지구를 등에 지고
다시 내려온다

그런데 또
개미는 웃음까지 등에 지고
나보다
먼저 내려와 있다.
(선용·아동문학가, 1942-)
+ 고 작은 것이

까만 씨앗들이 고물고물 움직인다
가던 길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곤
다시 걷다가 멈추고

작은 몸통에 검은 투구를 걸치고
여섯 개의 다리는
쉴 틈이 없다

긴 행렬이 되어
앞으로만 간다
까만 씨앗들이
굼질굼질 움직이더니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김시현·아동문학가)
+ 들리지 않는 말

풀섶 두꺼비가
엉금엉금 비 소식을 알려온다

비 젖은 달팽이가
한 잎 한 잎 잎사귀를 오르며 길을 낸다

흙 속에서 지렁이가
음물음물 진흙 똥을 토해낸다

작고
느리고
힘없는 것들이

크고
빠르고
드센 것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바닥 숨을 쉬고 있다
(김환영·극작가이며 삽화가, 1959-)
+ 작은 풀꽃

후미진 골짜기에
몰래 핀 풀꽃 하나
숨어 사는 작은 꽃에도
귀가 있다.
나직한 하늘이 있다.
때때로
허리를 밀어 주는
바람이 있다.
초롱초롱 눈을 뜬 너는
우주의 막내둥이.
(박인술·아동문학가)
+ 큰 나무 아래 작은 풀잎

얘야, 네가
큰 나무를 보러 왔다면
그 아래 피어난
키 작은 풀잎을 꼭 찾아보아라.
해마다 어깨 겯고 새로 돋는
풀잎, 풀잎이 만드는
작은 세상.

얘야, 네가
키 작은 풀잎을 보러 왔다면
그 위에 아름 굵은
큰 나무 꼭 쳐다보고 가거라.
어지간한 비바람쯤
끄떡도 않지.
밑동 튼실하게
뿌리박은 나무.
(이미애·아동문학가)
+ 모래 왕국

난 지금
모래 나라의 임금님입니다.

산도, 골짜기도, 들판도, 강도
마음대로 바꾸어 갑니다.

옛날얘기 속 임금님이라도
자기 나라 산과 강을
이렇게 바꿀 수는 없겠지요.

난 지금
정말로 위대한 임금님입니다.
(가네코 미스즈·일본의 천재 동요시인, 1903-1930)
+ 모래알의 크기

티끌 하나는
그 크기가 얼마일까요?

눈에 들어가면
모래알보다 더 크지요.

모래알 하나는
그 크기가 얼마일까요?

밥 속에 있으면
바윗돌보다 더 크지요.
(민현숙·아동문학가)
+ 모래 한 알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눈에 한 번 들어가 봐
울고불고 할 거야.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밥숟갈에 한 번 들어가면
딱! 아이구 아파! 할 거야.

모래알들이 작다고 하지 마
레미콘 시멘트에 섞이면
아파트 빌딩으로 변할 거야.
(정용원·아동문학가)
+ 작은 벌레, 그들에게는

온종일 가도 가도
내 눈에는
그냥 한 곳을 맴도는 것만 같은데
작은 벌레, 그들에게는
넓고 넓은 새 땅을
찾아가는 거란다

온 힘 다해 기어가도
내 눈에는
늘 그 자리인 것 같은데
작은 벌레, 그들에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 땅을 찾아가는 거란다
(권영세·아동문학가)
+ 가시

꼴랑
요 작은 것
하나가

내 발가락
비집고 들어와서는

하루 종일
내 생각
몽땅 뺏어갔잖아
(조무호·아동문학가)
+ 씨앗

씨앗은 크지 않아도 된다
까만 점 하나가 만든 나무숲
그 숲에 둥지 튼 비비새 한 마리
까만 씨앗 한 개가 하는 일은
작은 점 하나서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정두리·시인이며 아동문학가, 1947-)


+ 은행 한 알

동그란 은행 한 알에
나무 한 그루 들었다.

여긴 뿌리
여긴 줄기
여기는 잎

천백 살 되었다는
용문산 은행나무도
처음엔 요만했을 거야

조그만 씨앗 속에서
큰 꿈 키웠을 거야.

천년을 꿈꾸는
은행 한 알
(유은경·아동문학가)
+ 한 그루 작은 나무의 힘

터벅터벅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따라갑니다.

손자처럼
지팡이가 할아버지를 따라갑니다.

한 그루, 작은 나무
그 편안하고 든든한 힘.

할아버지 곁을 맴도는
나무 지팡이

여름 한낮, 할아버지에게는
한 그루 큰 나무입니다.

쪽빛 바람이 모이는
시원한 그늘입니다.
(이상현·아동문학가)
+ 이슬

몸 안 가득
해를 품음이여

우습게 보지 마라
작다고
업신여기지 마라
작다고

해를 품는 가슴이니.
(박두순·아동문학가)
+ 새끼발가락

미끄러지는 바람에
새끼발가락 하나를 다쳤다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어, 온몸이 기우뚱!
어, 지구가 기우뚱!
(현경미·아동문학가)
+ 빗방울

또르르
유리창에 맺혔다.

대롱대롱
풀잎에도 달렸다.

방울방울
빗방울이 모여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작자 미상)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김현승의 ´행복의 얼굴´ 외"> 양성우의 ´비 오는 날´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