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6일 토요일

물 아래 걸어가다

물 아래 걸어가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물 아래 길을
맨발로 걸어가고 있다
수로 열어놓은 저 거대한 물길에
한 치도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뿌리 깊게 내린 고목처럼
다리에 힘을 주고 있다
삶에 늘 축축하게 젖어 있어
물의 눈빛을 가졌다
밀림 속 우기 같은 시절이라
물의 입술을 지녔다
머리에 물의 풀이 무성하다
귓가에 소문처럼
물 쏟아지는 소리만 들었다
물로 된 육신이라서
물 밟고 가는 것은 금물이다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몸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소금의 바다 속 길인지
발 푹푹 빠지는 모래의 강 속 길인지
물 가득한 도시를 걸어간다
짠물인지 맹물인지
들이킨 물의 나라가 단단하다
목에 물의 가시가 박혔다
물 헤치고 가는 길이 담벼락이다
손톱이 다 닳고
살갗마저 벗겨진다
물비늘이 뚝뚝 떨어진다
물속에서 한참을 지내고 나왔으니
물 먹은 세상에서 물처럼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