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비상구가 없다

나의 사계는
내전으로 폐허가 된
아프리카 초원 같다
봄은 소싯적부터 불이 붙었다
연기 자욱하게 타올라
재가 된 초가집이다
물 먹은 여름은
아랫도리 무거워 지층 바닥까지
가라앉은 호수다
입술 적실 물이 없다
모래 바람 세차게 부는 가을은
상처 드러나는 시간이므로
짐승의 등뼈거나 해골이다
지금 겨울 국경에는
철조망만 높고
고개 숙이고 빠져나갈
비상구가 없다
나의 한 해는
감시의 눈초리만 번뜩이는
임시 수용소 같다
사방 천지, 당신에게 가는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으므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구원의 신호처럼
어디선가 별빛 반짝인다고 해도
들어 오고 나가는 길이란
내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늘 바깥으로 비상할
구멍이 없다